▶ 최상목·이창용 엇갈린 운명
▶ 최, 미에 ‘관세폐지 협의’ 이끌었지만 야권 탄핵에 경제사령탑 자진 사퇴
▶ 이, 관세발 성장률 전망 곤두박질에 위기 때마다 시장 안정 적극 나서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일 경제 사령탑 임기를 1년 4개월 만에 마치고 관직에서 물러났다. 관가에서는 최 부총리의 자진 사퇴가 정통 경제 관료로서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최 전 부총리는 서울대 법대 82학번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은 법이 아닌 행정”이라는 신념 아래 사법고시 대신 행정고시를 택해 공직에 몸담았다. 서울대 법대를 수석 졸업할 정도로 두뇌가 비상할뿐더러 정책을 설득하는 능력도 탁월해 ‘기재부 천재’ 계보를 잇는 관료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2024년 1월 윤석열 정부의 2번째 경제 부총리로 임명된 뒤 ‘역동 경제’를 기치로 내걸고 각종 정책을 추진했으며 올 1월 기재부 직원들로부터 ‘닮고 싶은 상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부총리로서 뜻을 펼치기에는 여건이 좋지 않았다. 여소야대 국면에 더해 최근 10여 년간 국회 권력이 지나치게 비대해지면서 정부의 역할이 점점 위축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력 대선 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경기도지사 재임 시절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며 기재부를 공격하기도 했다. 이 후보는 기재부 해체론을 대선 공약으로 내건 상태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2일 “정부와 국회의 권한이 점점 비대칭화되면서 관료들이 소신을 갖고 일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한 뒤에는 88일간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아 ‘1인 3역’을 수행했다. 경제 현안은 물론이고 사회·안전·국방·외교 등을 모두 도맡아 혼란을 최소화했다.
부총리로 복귀한 후에는 경제 현안 해결에 총력을 다했다. 대외 신인도를 관리하는 데 역점을 기울였고 미국 정부의 이른바 ‘2+2 협상’을 진두지휘하며 관세 폐지를 목적으로 한 ‘7월 패키지’를 마련하자는 협의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13조 8000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마련해 국회와 마지막까지 협상을 마무리한 뒤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안이 통과된 것을 끝으로 경제 수장 역할을 마무리 짓게 됐다.
한편 우리나라 경제 컨트롤타워인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사퇴하면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정부의 공식 조직은 아니지만 최근 최고 리스크 관리 기구로 떠오른 ‘거시경제·금융현안간담회(F4 회의)’에서 이 총재가 사실상 좌장 역할을 할 것으로 관측되면서다. 이 총재는 그동안 비상계엄 등 중대 국면마다 시장 안정을 위한 메시지를 내놓으며 ‘리스크 파이터’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했다. 통상·환율 등 경제 이슈가 산적한 가운데 이전 한은 총재와 다른 적극적인 발언과 행보를 바탕으로 경제 수장의 공백을 메우는 조력자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총재의 위기 수습이 가장 돋보였던 것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때였다. 당시 최 전 경제부총리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결정에 반대하고 사의를 표했을 때 강력하게 만류했던 게 바로 이 총재였다. 당시 이 총재는 “경제부총리가 경제 사령탑인데 부총리가 있어야 대외적으로 심리가 안정되고 경제 상황 수습이 가능하다”며 최 부총리를 돌려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관세 리스크로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이 곤두박질 치는 상황에서 “그것이 우리의 실력”이라며 경제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는 메세지를 역설한 것도 이 총재였다. 그는 올 2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회견에서 “내년도 성장률 전망치 1.8%가 우리의 실력이며 구조조정 없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해 경제계에 경고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구조적 문제인 교육·노동·인구 등 주요 의제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본인의 소신을 표명하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대학이 성적순으로 학생을 뽑는 게 가장 공정한 것은 아니다”라며 입시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금융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앙은행 총재가 사회 현안에 대해 언급하는 게 적절하냐는 비판이 있었지만 사회적 이슈에 대해 꾸준히 의견을 밝히면서 신뢰를 얻고 있다”며 “계엄·탄핵 정국에서도 정돈된 메세지를 발표하고 거시금융 리스크를 관리하는 모습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이달 4~7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리는 아시아개발은행(ADB)연차총회, 한중일 및 ‘아세안+3’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대미 관세 협상에서 환율이 의제로 올라온 가운데 고위급 참석이 어려워진 기재부 대신 이 총재가 물밑에서 주요국 당국자와 대응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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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박신원·한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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