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시장 개방 확대 힘겨루기
▶ 트럼프, 중 소비·금융시장 개방 요구
▶ 대일 ‘플라자·루브르 합의’와 유사
▶ 제조업 고용률 하락은 세계적 추세
▶ 미 경제 재편 구상 현실화에 의문도

[로이터]
중, 올해 정책 목표 ‘가계소비 확대’
수출 중심→내수 확대 전환에 주력
위안화 절하에 환율조작국 지정 등
양측 정면충돌 가능성도 배제 못해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무차별 ‘관세폭탄’을 던지고 ‘환율전쟁’도 마다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한 이후 처음으로 미국과 중국이 10일(현지시간) 스위스에서 마주 앉는다. 당장의 성과와는 무관하게 미중 양국이 ‘공개적으로’ 대화와 협상을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에 글로벌경제는 일단 안도하는 모습이다. 현재로선 미국과 중국이 그간의 물밑협상에서 합의의 실마리를 찾았는지 단언하기 어렵다. 쌍둥이(재정ㆍ무역수지) 적자 해소와 제조업 부흥이라는 트럼프의 정책목표는 ‘미국이 생산하고 중국이 소비하는’ 시스템을 전제하고 있고, 이 목표가 실현되려면 관세ㆍ환율에 더해 다소 ‘폭력적인’ 수준의 중국 소비ㆍ금융시장 개방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다.
■주목해야 할 ‘플라자 합의 이후’
트럼프가 목표한 적자 해소와 제조업 부흥은 관세ㆍ환율정책만으로 달성하기는 어렵다. 이는 경험적으로 확인된 바다. 미국이 1990년대 초반 한때 무역수지 적자 규모를 ‘0’에 가깝게 줄일 수 있었던 계기로 달러 대비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가치를 폭력적으로 절상한 1985년 9월의 ‘플라자 합의’가 거론되지만, 1987년 2월 달러 추가 약세를 막기 위한 ‘루브르 합의’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특히 루브르 합의는 미국이 당시 최대 무역적자 대상국이던 일본에 ‘정치적’ 선택을 강제한 것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엔화의 추가 강세를 막고 약달러 기조도 완화해 환율의 안정을 도모하자는 합의였지만, 실상은 미국이 일본에 소비 여력을 높이는 쪽으로 정책을 전환하도록 강요한 것이었다. 미국은 플라자 합의 이후에도 대일 무역적자가 증가 속도만 둔화했을 뿐 규모는 계속 늘어나자 일본 제품의 수입을 줄이는 데에서 미국 상품의 수출을 늘리는 쪽으로 전략을 바꿨다.
일본은 플라자 합의 이후 경기 충격을 막기 위해 실시했던 초저금리 정책과 재정 확대의 강도를 더 높였다. 시중에 풀린 막대한 유동성은 부동산ㆍ주식 등 자산가격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렸다. 도쿄 한복판 땅값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전체와 맞먹는다는 얘기가 나왔고, 닛케이지수는 불과 2년 새 2배 넘게 올랐다. ‘잃어버린 30년’으로 치달은 ‘버블’의 시작이었다.
루브르 합의 이후 일본의 구매력이 커지면서 미국은 1990년대 초반 무역적자 규모를 크게 줄였다. 반면 일본에선 인플레이션 우려에 따른 기준금리 인상으로 결국 부동산에서부터 버블이 터졌다. 일본이 미국의 ‘엔화 강세 유지 + 통화 완화’ 요구를 수용한 이유로는 미국의 ‘안보우산’에 대한 높은 의존도가 우선적으로 꼽힌다. 트럼프의 ‘관세-안보 연계’ 전략이 이미 40년 전에 현실화했던 셈이다.
■트럼프의 ‘미 생산-중 소비’ 구상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에 부과한 누적 (상호)관세는 145%에 달하고, 시진핑 체제도 125%의 누적 보복관세로 맞섰다. 정상적인 무역관계라면 어느 쪽도 현실화하기 어려운 수치이지만, 양측 모두 당장은 물러설 기미가 없다. 또 최근 대만을 비롯한 아시아 주요국의 급격한 통화가치 강세를 두고 트럼프가 중국을 겨냥해 ‘환율전쟁’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에 대해 중국이 ‘위안화 평가절하’로 맞대응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미국의 무역적자 해소와 제조업 부흥은 관세 부과ㆍ환율 조정과 함께 미국의 물건을 무역 흑자국들이 사줘야 가능하다. 트럼프가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중국에 부과한 145% 관세 철회의 조건과 관련해 “중국을 개방하라(free up China)”고 외친 이유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도 “트럼프 행정부의 목표는 중국 경제와의 분리가 아니다”면서 “중국은 소비를 늘리고 미국은 제조업을 확대하는 ‘크고 아름다운 재조정’을 원한다”고 말했다. 중국을 상대로 ‘제2의 루브르 합의’를 구상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사실 중국 입장에선 내수 진작이 올해 최우선 정책목표일 정도로 가계소비 확대가 당면 과제다. 미국의 견제로 글로벌 공급망 내 입지가 좁아진 만큼 기존 경제 체질을 바꿔야 할 필요성이 크다. 주요국들은 가계소비의 국내총생산(GDP) 기여도가 50~75%인 데 비해 중국은 40%를 밑돈다. 반면 중국의 가계저축률은 30%를 훌쩍 넘는다. 컨설팅기관 로듐그룹은 지난해 8월 보고서에서 “중국의 가계소비 비중이 10%포인트만 높아져도 전 세계 수요가 2%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도 제조업 강국의 기반을 어느 정도는 다져가고 있다. 트럼프 1기 때 시동을 걸었던 리쇼어링이 일부 현실화했고, 트럼프의 관세 압박에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의 미국 직접투자도 늘어나고 있다.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법(칩스법) 등의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그 결과 줄곧 하락하던 전체 일자리 가운데 제조업의 비중이 지난해에 0.1%포인트 상승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제조업 확대 한계ㆍ관세 거부감
‘미국이 물건을 만들고 중국이 이를 소비하는’ 시스템으로의 전환은 그러나 낙관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미국에서 제조업의 비중을 ‘상당한’ 정도로 늘리는 것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로버트 로렌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는 자동화, 소비 패턴, 임금 체계 등에 대한 통시적 연구를 통해 “제조업의 고용률 하락은 미국을 비롯한 서구 고소득 국가들의 공통된 패턴”이라고 지적했다. 경제의 체질 자체가 변화한 만큼 ‘공장 노동자’로 상징되는 전통적 제조업의 가시적인 확대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비농업분야 전체 일자리 중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950년대에 30%를 웃돌았지만, 지속적으로 낮아진 결과 근래에는 8%를 갓 넘는 수준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제조업 강국의 위상을 되찾겠다는 트럼프의 정책목표에 대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제조업 물신화’”라고 비판했다.
중국은 소비시장 활성화를 적극 추진하겠지만, 이 과정에서 트럼프의 관세 압박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트럼프는 수출길이 막힌 중국이 금리를 낮춰 내수 부양에 나서면 중국인들의 구매력이 증가하는 만큼 미국의 수출이 늘어날 수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중국의 내수 진작은 우선적으로 자국 내 과잉생산 해소와 맞물려 있다. 게다가 대미 무역의존도는 트럼프 1기 전과 비교해 절반 수준으로 낮아졌다. 1980년대에 일본이 구매력을 높여 미국산 제품을 소비하던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상황인 셈이다.
■위안화 절하 vs 환율조작국 지정
트럼프의 ‘미국 생산-중국 소비’ 구상이 단시간 내에 현실화하기는 어렵다. 다만 미국은 어떤 식으로든 제조업의 비중을 늘리려 할 것이고, 중국은 수출을 줄이는 대신 소비시장을 키워야 할 필요가 크다. 양측이 지난한 힘겨루기를 거치겠지만 결국은 타협점을 찾을 것으로 보는 이유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정치적’ 필요가 충돌할 경우 글로벌 경제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트럼프가 내년 11월 중간선거를 의식해 압박의 강도를 높이고, 미국과의 협상이 굴복으로 비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시진핑이 위안화 평가절하로 맞서는 경우다. 위안화 절하는 진작부터 트럼프의 관세 압박을 상쇄할 카드로 거론됐고, 중국은 트럼프 1기 때 일정 부분 효과를 봤다. 중국이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과잉생산 물품을 글로벌 시장에 쏟아내는 건 사실상 전 세계에 디플레이션을 수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미국이 환율조작국 지정으로 제재에 나설 경우 양측은 정면충돌을 피할 수 없다.
<
양정대 선임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