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는 정치학에서 사회학, 수학에서 토목 공학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파레토의 원리’라 부르는 법칙 때문이다.
분배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이탈리아 왕국의 경제 현실을 연구하던 그는 인구의 20%가 전체 토지의 80%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20대 80의 비율은 훗날 연구를 통해 이탈리아나 경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광범위한 영역에 적용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비즈니스 매출의 80%가 20% 고객에게서 발생하고 마이크로소프트 프로그램 장애의 80%가 20% 문제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 등이 그 예다.
그러나 이 원리가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경제다. 국부의 편중은 100년 전 이탈리아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연방 준비 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현재 상위 1%가 미국 부의 30.9%를 갖고 있는 반면 하위 50%는 2.6%밖에 없다. 또 상위 10%는 60%, 15%는 80%를 갖고 있다. 하위 85%가 남은 20%를 갖고 아둥바둥 살고 있는 것이다. CNBC에 따르면 미국인 44%가 단돈 1천 달러의 여유가 없이 살고 있다는데 빈말이 아닌 셈이다.
부 창출의 주요 수단인 기업의 소유에 관한 자료를 보면 양극화 정도는 더 심하다. 미국인의 62%가 이런 저런 형태로 주식을 갖고 있지만 전체 금융 자산의 93%는 상위 10%에 몰려 있다. 알맹이는 이들이 다 가지고 나머지는 껍데기만 핥고 있는 셈이다.
이렇기 때문에 주식이 오르면 오를수록 불평등은 심화된다. 피터 피터슨 연구소 발표에 따르면 지난 40년간 미국 가정의 실질 소득은 95% 증가했지만 상위 20%는 165% 늘어났다. 이런 불균형을 시정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푸드 스탬프 등 정부의 저소득층 보조금 지급이다. 이것 없이 38% 증가에 그쳤을 하위 20% 소득은 이를 감안할 때 134% 늘어났다. 역설적으로 불평등이 완화된 것은 2008년 금융 위기 때였다. 주가가 폭락하는 바람에 부자들이 더 많은 손해를 봤고 그 결과 불평등은 다소 줄어들었다.
가뜩이나 나빠지던 불평등을 더 악화시킨 것은 2017년의 첫번째 트럼프 감세안이다. 전문가들은 이로 인해 10년간 1조9천억 달러의 세수 손실과 재정 적자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거기다 감세로 인한 혜택은 대부분 고소득층에 돌아갔다. 상위 1%는 2025년 6만 달러의 감세 혜택을 본 반면 하위 60%는 고작 500달러 세금이 줄어들었다.
소득세율은 누진적이기 때문에 감세를 할 경우 부자가 더 혜택을 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상위 10%가 총 소득세의 72%를 부담하고 있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득 불균형이 계속 악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상태로도 만족을 할 수 없다는 듯 공화당은 요즘 다시 감세안을 추진중이다. 공화당은 2017년 1인당 500만 달러이던 상속세 감면액을 한시적으로 1천만 달러로 올렸는데 이번에는 이를 1천500만 달러로 다시 상향 조정하고 아예 영구화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저소득층 의료 보험인 메디케이드 등은 근로 의무 등 수혜 조건을 까다롭게 해 수혜자와 혜택 비용을 줄이겠다고 한다. 이 안이 통과될 경우 혜택을 보는 것은 초고소득층이고 피해를 보는 것은 중하류층이다.
지금 공화당과 도널드 주 지지 세력은 감세로 혜택을 보는 초고소득층과 한 때 중산층이었지만 세계화와 자동화로 일자리를 잃고 하류층으로 전락한 미국인들이다. 이들의 경제적 이익은 일치할 수 없는데도 공화당은 신 하류층 주민들에게 ‘당신의 적은 부를 독점한 초고소득층이 아니라 일자리를 빼앗아간 중국과 불법체류자들’이라고 속삭이면서 이들의 분노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데 성공했다. 중국은 값싼 의류와 가전제품으로, 불법체류자들은 값싼 노동력으로, 그나마 미국인들의 빡빡한 주머니 부담을 덜어준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
세계 3대 신용 평가회사인 무디스는 지난 주 국가 부채가 과도하고 해결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이유로 미국 국가 신용등급을 강등했다. 스탠다드&푸어와 피치사는 이미 2011년과 2023년 같은 조치를 취한 바 있다.
일론 머스크가 정부 지출을 줄인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공무원 수를 감축했지만 이는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연방 정부 예산의 70%는 소셜 시큐리티와 메디케어, 부채 이자 등 고정 비용이다. 이를 놔두고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지만 아무도 이를 건드리지 못한다. 유권자 반발이 무섭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공화당의 이번 감세안이 통과될 경우 미국 재정 적자는 향후 10년간 4조 달러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앞날이 걱정된다.
<
민경훈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