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존 자사주도 강제소각
▶ 최대주주·계열사에 넘기기도
▶ 신규 매입 위축·주주환원 약화
▶ 상장협 ‘부작용 의견서’ 내기로
▶ 사실상 경영권 방어장치 사라져
자사주 의무 소각을 담은 상법 개정안의 구체적 내용이 공개되기 전까지만 해도 시장에서는 기보유 자사주는 해당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전체 상장사 4분의 3(73.6%)에 해당하는 약 1,660개사가 보유 중인 자사주를 한꺼번에 강제 소각할 경우 시장에 미칠 영향이 클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권이 위헌 논란이 생길 수 있는 소급 입법까지 강행함에 따라 자사주를 많이 보유한 기업을 중심으로 ‘패닉’에 빠져드는 모습이다.
1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해당 법안을 검토하며 기업들에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 등을 검토하고 있다. 상장협은 법안 시행에 따른 자사주 매입 축소, 경영권 위협 등에 대한 우려를 의견서 형태로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역설적으로 매입을 위축시켜 당초 법안 취지를 달성할 수 없다는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 안팎에서도 자사주가 지배주주를 위해서만 활용된다는 선입견을 바탕으로 의무소각 제도가 만들어진 만큼 부작용을 염려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미국 등 선진국과 달리 신주인수선택권제도(포이즌필), 차등의결권 등 명확한 경영권 방어 수단이 없기 때문에 자사주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는 구조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해외 자본이나 행동주의 펀드의 ‘먹튀’를 막을 수 있는 건 자사주뿐인데 대주주 의결권을 제한하면서까지 소각을 강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사실상 자사주를 취득하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충분한 논의 과정 없이 법안 내용부터 발표되면서 일부 종목의 주가가 급등하는 등 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점차 커지고 있다. 실제로 인포파인(54.2%), 신영증권(53.1%), 일성아이에스(48.8%) 등 자사주 보유 종목이 높은 종목들은 최근 3개월 만에 주가가 두 배 상승했다. 자사주 의무 소각 등 증시 정책이 하나의 테마주가 됐다.
해당 법안을 둘러싼 법적 논란도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대형 로펌의 한 파트너 변호사는 “기보유 자사주 소각에 대한 경과 규정을 두고 있고 소각에 따른 기업 가치 영향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반드시 위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면서도 “대주주 입장에서는 충분히 위헌 소지가 있다고 반발할 수 있는 사안인 만큼 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시장에서는 상장사들이 기보유 자사주 처분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소각 외에 지배권을 강화할 수 있는 우회 처분 방안을 급하게 마련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종영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개정안은 7~8월 의견 수렴을 거쳐 9월 정기국회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며 “상장사의 자사주 활용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벌써 이달 들어서만 자사주를 다른 목적으로 처분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환인제약은 7일 자사주 100만 주를 케이프투자증권 등 한국 투자가를 대상으로 122억 원에 처분하기로 했다. 처분 목적은 ‘유통 주식 수 증가를 통한 거래 활성화 및 운영자금 확보’라고 설명했으나 소액주주들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우호 세력에 지분을 넘겼다며 반발하고 있다. 지엔씨에너지도 신사업 투자 및 유동성 확대를 목적으로 163억 원 규모의 자사주를 NH투자증권과 비공개 한국 투자자에게 넘겼다.
반면 자사주 취득은 점차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기업의 주주환원 방식은 크게 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으로 나뉘는데 주가가 낮을수록 자사주 활용 방식이 유리하다. 그러나 과도한 규제로 자사주라는 하나의 주가 부양 수단이 사라지게 되면 이로 인한 손실은 모든 주주가 함께 부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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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조지원·김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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