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 십년동안 안정과 번영을 가져왔던 경제질서의 붕괴에 전 세계가 경악을 금치못하고 있는 가운데 필자가 여러 국가로부터 듣는 질문은 동일하다. 기존의 체제 아래서 엄청난 번영을 이룩한 미국이 도대체 왜 이를 허물고 있느냐는 것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미국인들은 미국이 자유무역 체제의 최대 희생자였다고 믿는다는 필자의 설명에 그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한 외국인 고위 관리는 “자유무역 체제의 최대 수혜자가 미국이라는 너무도 명백한 사실을 어떻게 모를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MAGA 운동은 이에 관한 이야기를 매우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 트럼프에 반대하는 사람들조차 최근 수 십년동안 미국의 거부와 대기업들이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미국인들의 수입은 정체됐고, 일자리가 해외로 이전됐으며, 생활수준이 하락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이 중 어느 것도 정확한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를 바꾸고 있는 공공정책의 변화는 일화와 과장 및 거짓말로 점철된 일련의 가정에 근거를 두고 있다.
여기서 염두에 두어야 할 기본적인 숫자는 중간소득이다. ‘평균’ 소득은 정확한 실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일론 머스크, 빌 게이츠, 제프 베조스와 같은 거부들의 소득이 평균치를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중간소득이란 소득분포의 중간지대에 위치한 미국인들의 소득을 뜻한다. 중간소득을 기점으로 미국인의 절반은 이보다 더 많은 소득을, 나머지 절반은 더 낮은 소득을 올린다.
2021년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측정한 미국인 가구 가처분소득 중위값은 단 한 곳을 제외하곤 OECD의 다른 선진산업국들에 비해 높다. 유일한 예외는 룩셈부르크였다. 미국인 가구의 중간소득은 스위스, 독일, 영국, 일본을 앞질렀다. 특히 일본에 비하면 대략 두 배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아 스미스가 자신의 에세이에서 지적하듯 미국의 중간소득은 일반의 통념과 달리 정체된 것이 아니라 지난 수 십년 동안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스미스는 실질 개인 중간소득은 1970년대 이후 50%가 늘어났다고 지적한다.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시간당 임금은 1990년대 이래 대폭 상승했다. 소득 하위 1/3 계층에 속한 미국인들의 시급은 무려 40% 이상 인상됐다.
과거 이 기간동안 혼란이 있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것이 자본주의의 본질이다. 데이빗 오토를 비롯한 학자들은 제조업 부문의 급상승 결과로 1999년에서 2011년 사이 약 2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진 ‘중국 쇼크’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은 최근 이 숫자를 370만 개로 부풀렸다. 보수적 싱크탱크인 아메리칸 엔터프라이즈 인스티튜트에 제출된 에세이는 이 숫자를 전적으로 반박하고 오토가 제시한 이보다 낮은 수치에도 의구심을 표시했다.
그러나 주된 요점은 미국 노동시장이 요동친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민간종목에서 일하는 평균 3,000만 명의 근로자들이 매년 일자리를 잃고 있고, 이와 엇비슷한 숫자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잡는다. 차이나 쇼크가 이어지던 과거 수년 동안, 미국은 실제로 해외에서 전체적으로 200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얻었다. 게다가 이들은 패스트푸드 업계의 저임금 일자리가 아니었다
제조업 상실로 타격을 입었던 미시건주의 플린트와 노스캐롤라이나의 그린스보로를 눈여겨 보라. 지난 25년간 빈민층의 실질임금 성장률은 플린트와 그린스보로가 각각 40%와 26%를 기록했다.
이들은 예외적인 일화가 아니다. 지난 2018년 브루킹스 인스티튜트가 1970년까지 풍부한 제조업 일자리를 갖고 있던 185개 도시산업 카운티를 조사한 결과 115개 카운티가 제조업에서 벗어나 주민들의 복지를 개선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들 산업공동체 가운데 여전히 경제적으로 ‘취약’하다는 펑가를 받는 곳은 단 14개에 불과했다. 미국의 실업율이 벌써 3년 이상 50년만의 저점에 근접해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미국처럼 방대하고 다양한 경제에서 어려움을 겪는 곳은 늘 있기 마련이다. 이 문제가 더욱 절실한 이유 중 하나는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기 위해 경제가 붕괴된 곳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미국인들이 드물다는 것이다. 요니 애플바움이 그의 저서 ‘고착’에서 지적하듯 과거 미국인은 이동성이 대단히 강했고 늘 더 나은 기회를 찾아 움직였다. 그러나 쇠근 수 십년간 그들은 더 나은 경제적 기회가 그들을 찾아오기만을 기다리며 한 곳에 머물렀다.
애플바움은 2016 대선 경쟁에 관한 놀라운 통계를 제시한다. “직장을 찾아 집에서 두 시간 이상 떨어진 곳으로 이주한 백인 유권자들 사이에서 힐러리 클린턴은 6포인트의 견고한 우세를 보였다. 그러나 원래 거주지에서 차로 두 시간 이내에 있는 곳으로 거처를 옮긴 유권자들은 9포인트차로 트럼프를 지지했다. 이에 비해 고향을 등지지 않은 사람들은 26포인트라는 엄청난 차이로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다.”
이같은 수치는 미국이 겪고 있는 정치적 혼란의 본질을 서로 다른 시각으로 보여준다. 자본주의, 세계화, 첨단기술, - 그리고 결정적으로 - 달라지는 문화에 의해 초래된 변화와 혼란은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이런 불안감을 견딜 수 없어 세상이 예전처럼 돌아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 관세가 있건 없건 - 세계는 예전처럼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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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 CNN ‘GPS’ 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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