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가스에서 ‘조수미 콘서트’가 있는 날, 딸이 앙상블의 일원으로 연주하러 가야 했다. 딸은 비행기는 번거롭다며 자동차로 가기로 했다. 리허설이 있는 오후 2시까지 가려면 한시에는 도착을 해야 한다. 네비게이션이 4시간 반이 걸린다고 하는데 중간에 쉬어야 하고, 가는 길에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일찍 서둘러야 했다. 연주하려면 컨디션이 좋아야 하는데 혼자 운전하고 가는 것이 마음 놓이지 않았다. 여행할 겸 나도 같이 가기로 했다. 딸은 쉬게 하고 라스베가스까지 내가 운전했다. 공연장은 빈 좌석이 없었고 화려한 무대는 박수갈채 속에 잘 마쳤다.
다음 날 아침 딸이 운전하겠다고 했다. 나는 어제의 연주가 좋아서인지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중간 정도 거리인 바스토우쯤에서 바꿀 생각으로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길은 아직 많이 남아있지만 살그머니 “어제도 내가 했고 오늘도 여기까지 왔는데, 끝까지 할 수 있나 해보자”라는 마음이 생겼다.
“안 피곤해요? 이제 내가 할게요” “아니 괜찮아. 조금 더 갈 수 있어.” 딸이 웃으며 말했다. “엄마, 제주해협을 건너는 조오련 같아.” 딸의 한마디가 그 날의 도전을 성취로 바꾸어 주었다. ”나도 한 번 도전해 볼게” 바다를 건넌 건 아니었지만, 내게는 처음하는 장거리 운전이었다. 흐르는 물살이 있었고, 나는 그 물살을 스스로의 힘으로 헤쳐갔다. 라스베가스를 혼자 운전해서 다녀왔다는 것은 나에게 큰 도전이었다. 떠날 때 세운 계획은 아니었지만 나는 결국 긴 거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운전했다. 젊은 날에도 쉽게 해보지 못했던 일을, 지금의 내가 해냈다는 사실이 대견하고 뿌듯했다. 지금도 여전히 나를 확장해 나가는 도전의식을 가지고 있는 스스로에게 고마웠다.
Eddie World 주유소의 간판이 바스토우 근처 사막 한 가운데 우뚝 솟아 있었다. 가주에서 제일 크다는 주유소의 광활한 주차장과 수십 개의 주유 펌프 앞에 많은 차들이 서 있었다. 길 반대편에 있어 그냥 곁눈으로 보기만 하고 지나쳤다. 캘리포니아로 나가는 큰 차들이 한 차선을 차지했다. 승용차들이 차선을 바꾸며 요리조리 빠져 나간다. 강원도 대관령의 언덕을 오를 때 앞에 큰 차들이 가면 길이 막혀 답답할 때가 있었다. 예전에는 큰 차들을 시어머니라고 불렀다.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부딪치지 않고 빨리 가려는 것 같아 웃음이 나왔다. 속도를 내고 달리는데도 편안했다. 빠르거나 느리거나 같은 속도, 같은 흐름을 따라 가는 길이라 그런 듯 했다.
고속도로 위로 끝도 없이 이어지는 차량의 물결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달린다. 누군가는 빠르게, 누군가는 천천히, 때로는 멈추기도 하고 방향을 틀기도 하는 차들을 보며, 문득 인생도 저렇게 서로 다른 속도로 흘러가는 게 아닐까 싶었다. 어떤 인생은 앞만 보고 내달리고, 어떤 인생은 풍경을 보며 천천히 간다. 하지만 결국은 같은 방향, 같은 길 위에 있다. 나 또한 떠밀려 가는 듯한 그 흐름 속의 한 사람으로, 오늘이라는 길을 무사히 지나왔다. 인생도 아마 그렇게 지나가고 있겠지. 나도 그 속에서 때로는 서두르고 때로는 멈추어 서며 인생을 살아간다.
노을 지는 서쪽을 향해 집으로 오는 길은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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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숙 시인ㆍ수필가 미주문협 총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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