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했던 허리에 또 다른 부상이 더해졌다. 평생 하지 않던 운동을 시작하여 의욕이 앞선 탓이다. 운동은 생각만큼 되지 않아 제자리걸음이다. 게다가 지금처럼 부상을 입게되면 뒷걸음질 치기도 하여 목표했던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운동이 일상으로 되기에는 아직 멀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물리치료를 받으러 간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제일 먼저 반기는 얼굴이 있다. 그녀는 전화를 받거나 서류를 정리하면서 환자들에게 경쾌한 인사를 건넨다. 어머니, 아버지 하며 살갑게 대하니 모두가 좋아한다. 병원은 잘 다녀왔는지, 다친 다리는 괜찮아졌는지 염려하며 묻는다.
그곳에서만큼 나는 아직 젊은이다. 내 옆에는 지팡이를 쥔 노인, 휠체어에 몸을 기댄 환자. 외로움에 말이 없는 사람들이 앉아 있다. 머지않은 미래 내 모습을 보듯 그들을 바라보았다. 늙음과 아픔이 켜켜이 쌓여있는 그곳에서 역설적으로 나의 젊음을 가장 잘 확인할 수 있었다. 신고 있는 오렌지색 운동화가 어정쩡한 젊음을 드러낸다. 날씨는 속절없이 화창해서 안과 밖의 온도 차가 더 심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예약일 하루 전 확인 전화를 한다. 나는 허리가 나아지니 이제 어깨가 아프다고 하소연했다. 위로의 말이 듣고 싶었나 보다. 그러나 그녀는 낭랑한 목소리로 “얼마나 다행이에요. 한꺼번에 안 아프고 돌아가면서 아프니” 하고 웃는다. 미리 관리할 수 있으니 좋은 일 아니냐고 위로도 했다. 나는 허를 찔린 것 같아 “그러네요”하고 따라 웃었다.
이상하게 그녀의 말은 ‘어깨만 아픈 것이 얼마나 큰 다행인가’하는 착각을 일으켰다. 순간 고통이 줄어드는 것 같기도 했다. 곧 괜찮아질 거라는 기대에 마음마저 가볍다. 매일 아픈 사람만 보는 그녀는 고통을 맞이하는 자세를 아는 것이라 짐작되었다. 달래기도 하고 돌보기도 하면서 함께 가는 것이라는 것을 나보다 젊어 보이는 그녀는 이미 알아버린 것이다. 아픔도 상처도 불안도 삶의 동반자라는 것이 교훈처럼 다가왔다.
그녀가 나눠주는 것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오는 이에게 기운을 나눠주는 일이었다. 괜한 사람에게 내는 짜증을 받아주고, 말할 사람 없는 이의 사정도 들어주고, 외로움을 어루만져 마음을 넉넉히 내어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내가 그녀의 위로가 되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이라는 말이 가슴 속에 조금씩 채워졌다. 몸은 아프지만 나아질 수 있다니 다행이야,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곁에 있어 다행이야, 늦기 전에 고맙다, 사랑한단 말을 전할 수 있어 다행이야. 나는 이 작은 희망을 품고 잘 늙어가고 싶어졌다.
현실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 닥치기도 하고, 두렵기만 했던 일이 아무 일도 아닌 것으로 끝나기도 하니 예측할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긴장과 ‘다행이다’ 사이를 오가며 삶을 배우게 되는가 보다.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이 언제라도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자주 잊고 살았다. 특별할 것도 없는 날들을 지내다 예상치 못한 일을 당하면 뒤늦게 깨닫는다. 그동안 무심히 지나온 일상이 위태로운 기적 위에 놓여있는 날들이었다는 것을.
‘얼마나 다행이에요’는 내 마음속에 회복을 위한 지표가 되었다. 원하지는 않았지만 보듬어 치유하는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라 마음을 고쳐먹었다. 깊은 호흡을 하고 다시 맞설 준비를 한다. 어깨가 나아지면 다음은 또 어디가 탈이 나려나. 기대된다.
<
박연실 수필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