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격 살해 당한 찰리 커크는?
▶ 18세 때 ‘터닝포인트 USA’ 설립
▶ 학벌 대신 SNS 캠퍼스 무대로
▶ 젊은 남성·노동 계층 폭발적 지지
▶ 트럼프·밴스 집권에 ‘일등 공신’
지난 10일(현지시간) 한 청년이 미국 유타주(州) 유타밸리대에서 열린 행사에서 연설 도중 총을 맞고 사망했습니다. 총격 사망 사건은 미국에서 흔한 일이지만 이 청년의 죽음은 다른 사건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여파를 불러왔습니다. 미국의 현직 대통령과 부통령은 마치 성인이 별세하기라도 한 것처럼 깊은 애도를 표하고 있습니다.
사건 직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 그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말 훌륭한 사람” “위대하고 전설적이기까지 한 (사람)” “진정한 위대한 미국 애국자”라고 치켜세웠습니다. 미국 전역에 추모를 위한 조기 게양을 지시하는가 하면, 민간인에게 수여 가능한 최고 훈장인 ‘자유의 메달’ 추서 의사도 밝혔습니다.
JD 밴스 부통령 부부는 당초 11일 뉴욕에서 9·11 테러 24주기 추모식에 참석할 예정이었는데요. 이를 취소하고 유타주로 날아가 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투’로 이 청년의 시신을 고향 애리조나주 피닉스까지 옮겼습니다. 밴스 부통령이 직접 청년의 관을 운구해 전용기 내부에 싣기도 했죠. 대체 이 청년이 어떤 인물이길래 한 나라의 수장과 2인자까지 그의 죽음에 이토록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것일까요?
이 청년은 바로 찰리 커크(31)입니다. 커크는 트럼프 대통령의 열혈 지지자이자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을 대변하던 청년 우파 활동가입니다. 청년 보수정치단체 ‘터닝포인트 USA’ 창립자 겸 대표이기도 하죠.
커크는 공직에 출마한 적도 없고 공식적인 정부 직책을 맡은 적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미국 대선 이후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러라고 리조트 인근 임대 콘도로 거처를 옮기며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 실세’로 부상했습니다. 새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지근거리에서 전략을 논의하기 위해서죠. 아내 에리카와 두 어린 자녀도 이곳에서 함께 머물렀습니다.
커크는 지난 대선에서 젊은층 표를 가져오고 선거 자금 모금에도 큰 기여를 해 트럼프 대통령 재선에 핵심 역할을 한 ‘킹메이커’로 꼽힙니다. 트럼프 2기 내각이 트럼프 개인에 대한 충성심이 깊은 인사로 채워지도록 하는 데도 깊숙이 개입했습니다. 예컨대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장관 지명 후 성폭행 혐의로 위기에 처하자, “헤그세스를 지지하지 않는 상원의원은 공화당 공천을 받지 못하게 하겠다”고 압박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초에는 로나 맥대니얼 공화당전국위원회(RNC)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충분히 지지하지 않는다고 비판했고, 결국 맥대니얼은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커크는 연방 상원의원(오하이오)이었던 밴스 부통령을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로 밀어주는 데에도 일찍부터 앞장섰습니다. 두 사람의 인연은 2017년 밴스 부통령이 회고록 ‘힐빌리의 노래’를 낸 뒤 같은 해 폭스뉴스에 출연한 모습을 본 커크가 직접 메시지를 보내면서 시작됐습니다. 밴스 부통령이 2021년 오하이오 상원의원 경선 출마를 고려했을 때도 가장 먼저 연락한 사람이 커크였습니다.
밴스는 훗날 “커크가 자신이 만든 단체 터닝포인트 USA 행사에서 기부자들에게 나를 소개했다”고 밝혔는데요. 그는 엑스(X)를 통해 “그럴 이유가 전혀 없었지만, 우리가 친구였기 때문에 그렇게 해 줬다”고 회상했습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사건이 한 자릿수에 머물렀던 밴스의 지지율을 끌어올려 경선 판세를 뒤집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렇다면 시카고 교외 출신 한 무명 청년은 어떻게 대통령의 킹메이커이자 마가 운동의 선구자로 떠올랐을까요. 커크가 터닝포인트 USA를 설립한 2012년, 그는 겨우 18세였습니다. 당시 그는 보수 성향 신흥 온라인매체인 브라이트바트에 “폴 크루그먼과 같은 진보 경제학자들이 교과서에 등장하며 공교육이 선전과 세뇌에 앞장선다”는 취지의 글을 기고했고, 이는 폭스뉴스 출연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그는 이를 계기로 보수주의 정치운동 ‘티파티’ 활동가 빌 몽고메리의 눈에 들었고, 대학 진학을 포기하라는 그의 조언을 받아들여 베일러대를 중퇴했습니다.
이후 커크는 몽고메리와 함께 터닝포인트 USA를 설립, 학벌 대신 소셜미디어와 대학 캠퍼스를 무대로 젊은층 보수화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대학에 “마르크스주의와 젠더 이데올로기가 만연해 있다”고 주장했는데요, 전국 대학을 돌며 ‘내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라’라는 즉석 토론을 진행했습니다. 유대인·동성애자·유색인종을 겨냥한 선동적 발언을 쏟아내며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대 시대정신으로 여겨진 ‘정치적 올바름’에 도전했습니다. NYT는 “그의 명쾌하면서도 때로는 날카로운 답변은 복잡한 사회 이슈를 꿰뚫었고, 특히 온라인 시대 고립된 젊은 남성들에게 강하게 와닿았다”며 “일부는 그의 대담함에 매료됐고, 일부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짚었습니다.
대학 학위가 없는 ‘보수 청년’이 유명 대학 엘리트 ‘진보 청년’에게 한 수 가르치는 듯한 모습은 민주당을 ‘엘리트와 부자 셀러브리티들의 정당’으로 인식하는 서민층에 호소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는 지난 3월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 팟캐스트에 출연해 “나는 학위가 없다는 점이 자랑스럽다”며 “아직도 대다수의 국민은 대학 학위가 없는데, 민주당은 대학 교육을 너무 많이 받은 탓에 이 나라의 블루칼라를 속물적으로 바라보게 됐다”고 꼬집었습니다.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층으로 분류됐던 노동 계층과 청년층에서 놀라운 지지를 얻어 낸 이 청년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후 정권을 가져오려던 보수 공화당 정치인과 거물 후원자들의 눈에 띈 건 당연했습니다.
초창기부터 그는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 등 트럼프 가문과 포스터 프라이스 같은 공화당 거물 후원자의 지지를 얻었습니다. 22세였던 2016년에는 공화당 전당대회 연설 기회까지 잡았습니다.
터닝포인트 USA는 2016년 마가 운동을 시작하며 현재까지 2억5,000만 달러(약 3,459억 원) 이상을 모금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결과 커크 개인도 막대한 부를 쌓을 수 있었습니다. 2023년 AP통신은 커크의 애리조나 컨트리 클럽 저택은 475만 달러에 달하고, 커크가 지인들의 회사에 최소 1,520만 달러 자금을 지원했다고 보도했는데요. 세무 기록에 따르면 커크의 수입은 2016년 2만7,000달러에서 2021년 40만7,000달러로 급증했습니다.
자금력을 바탕으로 조직화도 활발합니다. 터닝포인트 USA는 매년 수십 개 캠퍼스 지부를 세웠고 현재 4,000개 고등학교와 대학에 진출해 있습니다. 국회의원, 극우 인플루언서 등 유명 우파 연사들을 대학에 초청하는 한편, 교육·네트워킹·조직 활동을 통해 차세대 활동가들을 키우는 네트워크를 구축했습니다.
이는 결국 지난해 대선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영국 BBC방송은 “커크가 단체 자금과 수천 명의 자원봉사자를 투입해 투표를 독려했으며, 트럼프 선거 캠프가 전통적 홍보 활동에서 소외된 유권자층을 공략하는 데 겪은 한계를 보완했다”고 짚었습니다. 커크는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젊은층 득표율 45%를 안겨줬습니다. BBC가 커크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과 젊은 공화당원의 연결고리이자, 젊은 공화당원들의 영웅이며, 백악관의 핵심 고문이었다”고 평한 것도 무리가 아닌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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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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