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물건을 살 때 제일 먼저 참고로 하는 것이 같은 물건을 산 다른 사람들의 평가다. 그 이유는 ‘군중의 지혜’라는 것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체계적으로 연구한 제임스 서로위키라는 사람은 2004년 ‘군중의 지혜’라는 책도 써냈다. 그는 이 책에서 군중은 경험한 물건은 물론 경험하지 않은 사안까지 정확하게 밝혀내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 한 예로 든 것이 ‘우생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랜시스 골턴 소 무게 측정 시험이다. 군중을 우습게 알던 골튼은 1906년 800명을 불러 모아 처음 보는 소의 무게를 점쳐 보라고 했다. 이들의 추정 평균치는 1207파운드로 실제 무게인 1198파운드와 1%도 차이가 나지 않았다. 이들이 정확한 추측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관측자의 수가 많아지면서 과대평가와 과소평가가 상쇄되고 각자 고유 지식이 평가에 도움을 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중이 늘 지혜로운 것은 아니다. 인간은 군중의 일부가 되면 감정에 휘말려 선동당하기 쉽고 책임을 면제된다는 착각에 빠져 끔찍한 일도 손쉽게 자행한다. 이런 ‘군중의 광기’가 투자의 영역에서 일어날 때 나타나는 현상이 버블의 팽창과 붕괴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버블의 하나는 1720년 영국의 ‘남양 회사’와 프랑스의 ‘미시시피 회사’ 주식이다. 둘 다 아메리카 신대륙이 발견되고 이곳과의 무역을 통해 거만의 돈을 벌 수 있다는 믿음이 퍼지던 시기에 발생했다.
연일 주식이 오르면서 평소 주식에는 문외한이던 사람들마저 뛰어들기 시작했고 그 덕에 주가는 1년새 10배가 올랐으나 그 후 폭락에 폭락을 거듭, 휴지에 가까운 수준으로 떨어졌다.
투자 광풍은 신분의 고하나 지식의 유무와는 상관없었다. 위대한 천재 아이작 뉴턴도 여기 뛰어들어 지금 돈으로 100만 달러에 달하는 7천 파운드의 이익을 챙겨나왔지만 그 후 계속 주가가 상승하자 다시 들어갔다 결국 2만 파운드를 날리고 말았다. 뉴턴은 죽을 때까지 자기 앞에서 이 이야기를 금지했다 한다.
버블은 18세기에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20세기초 라디오와 자동차 등 기술 혁신이 계속되면 미 주가는 천정부지로 올랐다. 1920년대 10배나 뛰었던 다우존스 주가지수는 1929년 전 정점을 찍은 후90%를 날렸다.
90년대말 이번에는 인터넷 광풍이 불면서 이토이즈니 펫츠닷컴이니 이름도 들어보지 못하고 수익도 없는 회사 주식들이 한때 몇십배씩 치솟았으나 거품이 꺼지면서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이런 버블의 기억이 사라지기도 전인 2000년대 초중반 이번에는 주택 버블이 부풀기 시작했다. 1%대의 초저금리에 힘입어 주택 가격이 오르자 아무런 증빙 자료 없이 허위 서류로 론을 받아 마구 집을 사들이고 이런 무자격 론을 기초로 한 서브프라임 담보 채권이 기승을 부렸다. 이 또한 거품이 터지면서 세계적인 금융 위기를 불러왔다.
그 후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다시 버블이 부풀어 오르고 있다. AI 광풍이 그것이다. 과거 모든 버블이 그렇듯이 이번에도 이유는 있다. 인공 지능이 인류 생활에 일대 혁신을 가져올 것은 과거 신대륙 무역부터 자동차, 라디오, 인터넷이 그랬던 것처럼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흐름을 누가 제대로 타 돈을 버는 기업을 이끌어 갈 지, 언제 그 때가 올 지 아는 것은 훨씬 어렵다.
AI 버블에 대한 경고는 외부인이 아니라 핵심 인사이더들로부터 나오고 있다. AI의 상징인 챗GPT의 창시자인 샘 올트먼은 지난 달 투자가들이 AI에 대해 “지나치게 흥분하고 있다”며 지금 AI는 버블 상태라고 말했다. AI가 진정 혁명적인 것은 맞지만 돈의 홍수와 ‘바합리적인 낙관론’이 기업 가치를 부풀리고 있으며 일부 투자가들은 큰 낭패를 볼 것이라고 경고했다. 메타의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도 AI 과투자로 버블이 형성되고 있으며 이에 비해 생산성이 향상되지 못하고 있다고 밝히고 주가 폭락 가능성을 우려했다.
최근 나온 MIT 보고서는 AI 관련 회사의 95%는 아직 의미있는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제롬 파월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 의장은 최근 미 주가가 매우 과대평가돼 있다고 경고했다. CFRA 보고서에 따르면 미 주가는 지난 20년 평균보다 41% 고평가 돼 있다.
이런 일련의 발언과 보고서는 미 증시가 처한 위험을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지금 당장 버블이 터진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닷컴 버블은 1996년 당시 연준 의장이던 앨런 그린스팬이 ‘비이성적 낙관론’을 우려한 후에도 4년을 더 부풀다 터졌다. AI로 손쉽게 돈을 벌려는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잘 고려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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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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