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투자 MOU 수정안’ 제시 후 김정관-러트닉 회동 성사
▶ 韓 “통화 스와프는 선결조건”…직접투자 비중·투자처 선정권 등 쟁점

김정관 장관과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한미 관세 협상이 총 3천500억달러(493조원)의 대미 투자 패키지 구체화 방안을 놓고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추석 연휴 중 미국에 급파돼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회담해 양국이 협상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5일(한국시간) 대통령실과 관계 부처에 따르면 김 장관은 지난 4일(미시간) 미국에서 러트닉 장관과 한미 관세 협상 명문화를 위한 회담을 했다.
김 장관의 이번 방미 협의는 지난달 11일 이후 약 한 달 만이다.
우리 측을 대표해 대미 관세 협상의 '키맨'인 러트닉 장관과 담판을 이어가는 김 장관의 이번 방미는 정부에서도 소수의 대통령실 핵심 고위 인사만 인지하고 있을 뿐, 대부분의 통상 당국자조차 모르고 있을 정도로 은밀하고 전격적으로 진행됐다.
김 장관은 한국시간으로 6일 오전 뉴욕발 항공기로 입국할 예정이어서 이번 회담은 러트닉 장관의 자택이 있는 뉴욕에서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정부 안팎에서는 김 장관의 이번 방미가 3천500억달러 투자 방안에 관한 우리 측의 '수정 제안'이 있고 나서 진행됐다는 점에 주목한다.
한미는 지난 7월 30일 타결한 관세 협상에서 미국이 예고한 대(對)한국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고, 한국이 총 3천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시행하는 등의 내용에 합의했지만 이행 방안을 놓고는 큰 이견을 보여왔다.
한국은 7월 관세 협상 타결 때 직접 현금을 내놓는 지분 투자(equity)는 5% 정도로 하고 대부분을 직접 현금 이동이 없는 보증(credit guarantees)으로 하되 나머지 일부를 대출(loans)로 채우려는 구상이었지만 미국은 앞서 일본과 합의처럼 '투자 백지수표'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후 한국 정부는 ▲ 무제한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 ▲ 합리적 수준의 직접 투자 비중 ▲ '상업적 합리성' 차원에서의 투자처 선정 관여권 보장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런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미국이 요구하는 투자 양해각서(MOU)에 서명할 수 없다는 강수를 뒀는데, 관세 협상 결렬 가능성까지 배제하지 않으며 사실상 '배수진'을 친 상황으로 평가된다.
특히 한국은 한미 통화 스와프를 대미 투자의 '필요조건'으로까지 규정하면서 대화 진전을 향한 사실상의 선결 조건으로 내걸었다.
한국 정부는 지난달 11일 김 장관과 러트닉 장관의 회담 때 우리 측의 이런 요구 사항이 반영된 '투자 MOU' 수정안을 제시했다.
한국이 미국 코트로 공을 넘긴 상황에서 이번에 추가로 진행된 김 장관과 러트닉 장관 간 회담에서는 미국 측이 한국의 이 같은 '수정 제안'에 관한 구체적인 반응을 내놨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 정부 관계자는 "김 장관의 방미는 미국이 한국 측의 새로운 제안에 반응해야 가능한 일"이라며 "한국이 연휴 중이라도 미국은 쉬는 시기가 아니니 김 장관의 방미는 언제든 준비되고 있던 상태였다"고 전했다.
협상 교착 상황이 길어지는 가운데서도 미국이 협상의 판을 깨고 그간 위협하던 '관세 복귀'의 길로 가는 대신 지속적 협상을 통해 접점 찾기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통상 전문가 사이에서는 한미가 쟁점인 투자 MOU 문안과 관련해 직접 투자 규모와 한국의 투자처 선정 과정에서의 역할과 관련해 상호 유연한 해석이 가능한 표현을 담는 방식으로 절충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외견상 통상과 다른 외교안보의 축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한국의 숙원 과제인 일정 농도 이하의 우라늄 농축과 핵연료 재처리 허용 등에 관한 논의도 결과에 따라서는 한미 관세 협상의 돌파구 마련을 촉진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이 분야에서 성과가 도출되는 경우 대미 투자 비용에 관한 국내 여론의 평가가 한층 관대해질 가능성이 있어서다.
김 장관과 러트닉 장관의 이번 대화는 한미 관세 협상의 중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이는 이달 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을 앞두고 열렸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두 장관의 회담 성과에 따라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해 이 대통령과 대좌할 APEC 정상회담이 개막하는 이달 31일 전까지 양국 간 절충점을 찾기 위한 노력에 속도가 붙을 수 있다.
다만 한미 정부는 이번 협상 분위기에 관한 단편적 정보도 노출하는 것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이날 "정부는 국익 최우선이라는 원칙하에 미국 측과 관세 협상 후속 협의를 지속해 나갈 계획"이라고만 밝혔다. 산업통상부는 출발 단계부터 김 장관의 공식 방미 일정을 일체 외부에 공표하지 않았다.
아울러 미국으로서는 이미 일본과 무역 합의를 마무리한 상황에서 한국에 이보다 '관대한 조건'에 합의해준다면 남은 다른 무역 협상국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부담을 느낄 수 있다.
WSJ은 최근 보도에서 트럼프 행정부와 한국과의 무역 합의가 어떻게 이뤄지는지가 미국이 수십 개 국가들과 진행 중인 광범위한 관세 협상을 평가하는 핵심 바로미터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한 한국 정부가 '필요조건'으로 내건 무제한 한미 통화 스와프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입장에서 구미에 당기는 조건이 아닌 데다가 체결 주체 역시 미 정부가 아닌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라는 점에서 단기간에 합의점을 도출하기 어려운 문제라는 관측도 많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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