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도구를 이용하는 동물’로 불리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동물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판명됐다. 인간과 가까운 침팬지나 원숭이들이 돌맹이나 바위를 이용해 너트를 깨 먹는 장면이 목격됐기 때문이다. 터스크피시라 불리는 물고기조차 바위에다 조개를 집어던져 까 먹는다. 까마귀는 나뭇가지를 이용해 벌레를 잡고 낙지는 코코넛 껍질을 가지고 다니며 집으로 사용한다.
심지어 인간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불을 사용하는 동물도 발견됐다. 호주에 사는 흑매가 그것이다. 이 매는 산불이 나면 불이 붙은 나뭇가지를 물고 날아가 마른 풀밭에 던진다. 이에 놀란 벌레와 작은 동물들이 뛰쳐나오면 잽싸게 포획하는 것이다. 낚시를 하는 새도 있다. 일부 왜가리는 벌레 같은 먹잇감을 자기 앞에 던져 물고기를 유인한다. 이를 먹으러 몰려드는 고기를 여유있게 잡아먹는 것이다.
문화를 후대에 전승하는 것은 인간뿐이란 신화도 깨졌다. 1953년 일본 남단 고지마 섬에서 나중에 ‘이모’(‘감자’를 뜻하는 일본말)라는 이름이 붙여진 18개월 된 어린 원숭이가 고구마를 바닷물에 씻어 먹는 모습이 관찰됐다. 인간이 감자를 소금에 찍어먹듯 그것이 더 맛있었던 모양이다. 이를 지켜본 다른 원숭이들이 이를 따라했을뿐 아니라 후손들에게도 교육해 이곳 원숭이들은 지금도 이런 전통을 지켜가고 있다.
온천욕을 즐기는 원숭이도 있다. 일본 북쪽 나가노에서는 원숭이들이 노천 온천에 몸을 담그며 휴식을 취하면서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피한다. 원숭이들의 이런 행동은 70년대 처음 목격된 후 대대로 전해져 지금은 이것이 이 지역 관광 포인트가 됐다.
언어는 인간만이 사용한다는 통설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침팬지계의 아인슈타인’으로 불리는 와슈라는 동물은 350개의 단어를 이해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뿐만 아니라 와슈는 루리스라는 양자에게 이를 가르치기까지 했다.
동물들이 도구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되자 이번에는 인간만이 도구를 만든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러나 이 또한 인간의 희망 사항으로 드러났다. 침팬지가 나뭇가지를 잘라 나뭇잎을 제거하고 개미구멍에 집어넣어 낚시를 하는 장면이 목격됐다. 이 사실을 확인해 세상에 널리 알린 사람이 제인 구달이다.
구달이 유명해진 것은 29살 때인 1963년 탄자니아 곰베 침팬지 보호구역에서 이들의 행태를 관찰하며 쓴 보고서가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에 실리면서부터다. 네덜란드 사진작가인 휴코 반 로윅이 찍은 사진과 함께 쓰여진 이 글에서 구달은 말라리아와 야수와 싸우며 관찰한 야생 침팬지의 모습은 그녀를 동물학계의 스타로 만들었다. 진화 생물학의 권위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는 그녀의 작업을 “서양 과학의 가장 위대한 업적의 하나”라고 불렀다.
그녀가 본 침팬지 사회의 모습은 도구를 만드는 일뿐만 아니라 위계 질서와 짝 고르기, 자녀 교육, 심지어는 인간의 고유 영역으로 여겨졌던 부족 전쟁에 이르기까지 인간과 너무 닮아 있었다. 동물에 관한 연구가 발달하면 할수록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질이 아니라 정도의 차이임이 밝혀지고 있다. 인간과 침팬지의 32억개 유전자 쌍 중 98.8%가 일치하는데 이것이 우연일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된다.
제인 구달은 엔지니어 아버지와 소설가 어머니 사이에 1934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타잔’을 좋아했던 구달은 아프리카 여행이 꿈이었으나 어릴 때 부모가 이혼하는 바람에 어렵게 자랐으며 비서일을 하며 근근이 생계를 꾸려왔다.
그러던 그녀에게 꿈 같은 행운이 찾아왔다. 아프리카에 농장이 있던 친구가 그곳으로 초대를 한 것이다. 거기서 그녀는 다시 한번 행운을 맞는다. 세계적인 고고학자인 루이스 리키박사가 그녀를 비서로 채용한 것이다.
탄자니아 올두바이 계곡에서 인류 조상의 화석을 찾던 리키는 원인류와 침팬지의 공통점을 연구하기 위해 1960년 그녀를 곰베의 침팬지 군락지로 보낸다. 그것이 그녀와 동물학의 앞날을 바꾸리라고는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의 연구가 인정을 받으면서 학사 학위도 없던 그녀에게 캠브리지 대학은 박사 학위 과정 입학을 허락하며 구달은 1965년 박사 학위를 받는다.
구달은 침팬지 생태를 연구하면서 이들을 포함, 생태계 보호의 필요를 절감했고 환경 운동가의 역할까지 맡는다. 1977년 세워진 제인 구달 연구소는 현재 세계 최대 동물 연구 및 보호 단체의 하나다. 32권의 책을 쓴 그녀는 동물 보호 운동의 대명사로 떠오르면서 ‘알버트 슈바이처상’ ‘미국 자유의 메달상’ 등 수많은 상을 받았으나 그녀가 가장 자랑스러워할 칭호는 미국 인디언들이 붙여준 ‘어머니 대지의 자매’가 아니었을까.
그 자매가 지난 주 가주에서 91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누구보다 동물을 사랑하고 그 보호에 앞장섰던 그녀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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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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