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桃源行舟圖(도원행주도)
▶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 1861-1919) (배를 타고 복사꽃 마을을 찾아가다) 국립중앙박물관
심전 안중식은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의 제자로, 조선의 마지막 궁정화가이며 조선시대의 전통 회화와 서양화 기법을 결합하여 정교하고 섬세한 독창적 화풍을 이룬 사람이다.
도화서 출신인 그는 대한제국의 고종과 순종의 어진(御眞)을 그렸고, 1918년에 서화협회를 조직하는 등 일제의 강점과 함께 밀려오는 서양화와 일본화의 유행으로부터 조선시대 전통의 그림을 지키려 노력하였다.
이 작품은 중국 동진(東晉)의 도연명(陶淵明, 365-427)이 지은 <도화원기(桃花源記)>를 상상하여 1915년 심전이 54세 때 그린 그림으로, 속세를 떠나 평온한 이상향을 그린 고전적 서사에 바탕을 두고 있다. 도화원기는 세속과 떨어진 노장사상(老壯思想)의 이상세계를 그린 이야기인데, 이 그림 오른쪽 위에 쓰여있는 화제시는 당나라 왕유(王維)의 <도원행(桃源行)>이다.
<도화원기>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어떤 어부가 배를 몰고 가다가 길을 잃었는데, 복숭아꽃이 만발한 숲을 지나 우연히 커다란 동굴을 발견했다. 그 속으로 들어가 보니 육지처럼 넓은 평지가 나왔고, 옛날 진(秦)나라의 난리를 피해 숨어 사는 사람들의 후손이 평화롭게 사는 마을, 즉 무릉도원(武陵桃源)이 나왔다. 어부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꿈같은 시간을 보내다가 집이 생각나서 떠나왔는데, 오면서 길에 표식을 해두었지만, 나중에 다시 가보려고 아무리 그 입구를 찾아도 찾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배를 몰고 가다가 물길을 잃었는데
강물 따라 활짝 핀 복사꽃 숲 보았네
계곡 속 동굴 지나 배 저어 가니
밝은 세상 펼쳐진 도화원에 닿았네
그 속에선 다툼도 늙음도 없었기에
꿈결인가 지내다가 처자식 생각나서
아쉬움 가슴에 안고 떠나왔다네
아름다운 그 세상 잊지 못해 다시 찾아갔지만
아무리 찾아도 입구는 보이지 않고
강물엔 복사꽃만 무심하게 떠내려가네
무릉도원은 중국과 조선의 화가들이 즐겨 그린 이상향의 상징이었다. 조선시대 안견(安堅)이 그린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는 평범한 백성들이 살던 도연명의 <도화원기>와는 달리, 안평대군이 꿈에서 본 무릉도원을 그린 것으로, 정치적 의도가 숨겨져 있는 유교적 이상향을 그린 그림이었다. 결국 이 그림으로 인해 안평대군은 야심가인 수양대군(首陽大君)으로부터 화(禍)를 당했다.
심전은 전형적인 관념산수화의 구성으로 높은 산세, 계곡을 흐르는 폭포, 운무(雲霧) 등 기이하고 복잡한 경치를 청록색과 분홍색을 사용하여 몽환적인 분위기를 그렸고, 산과 바위를 피마준(披麻皴, 산의 겉면을 표현할 때 베를 풀어놓은 것처럼 물결 짓는 필선으로 그리는 기법)과 태점(苔點, 산ㆍ바위ㆍ땅이나 나무줄기에 난 이끼를 나타낼 때 쓰는 작은 점) 기법으로 표현하여 그림에 세밀함을 더했다.
그림의 중심부에는 복사꽃이 핀 물길을 거슬러 배를 타고 가는 뱃사공이 있고, 멀리 보이는 동굴 밖으로 넓은 강과 들판이 펼쳐진다. 그림 왼쪽 상단부의 산과 계곡은 지극히 세밀하고 아름답게 그려졌고, 왼쪽 중간과 무릉도원 입구에 그려진 푸른 소나무는 그림 전체에 액센트를 준다.
이 그림은 조선 왕조의 몰락과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이제 다시는 옛날로 되돌아갈 수 없는 현실을 그림으로써 표현한 듯하다. 바로 얼마 전까지도 있었던 500년 왕조라는 과거의 세계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현실 속으로 다시 돌아와 살아야 하는 작가의 무거운 심정을 오히려 화려한 그림으로 그린 것이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
최규용 교수 (메릴랜드대 화학생명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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