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
▶ 유춘(有春) 이인문(李寅文, 1745-1821) (끝없이 펼쳐지는 강과 산, 부분도) 국립중앙박물관
유춘 이인문은 도화서 화원으로 단원 김홍도와 함께 당대를 대표하는 화가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는 스스로를 ‘고송유수관도인(古松流水館道人),’ 즉 ‘오래된 소나무와 흐르는 물이 있는 집의 도인’이라 불렀는데, 그의 소나무 그림은 정교함과 시원스런 필선이 특징으로 조선 시대 화가 중 최고로 평가된다. 그의 그림은 깊은 기세, 즉 심원성(深遠性)이 있다고 그 시대의 사람들이 말했다.
<강산무진도>는 ‘강과 산이 끝없이 이어진다’는 뜻으로 그의 대표작이다. 폭 44.4cm, 가로 길이가 8m가 넘는 초대형 횡권(橫券, 두루마리) 작품으로 조선 시대 산수화 중 가장 큰 그림이다. 이 그림은 유교적 이상향을 그린 작품으로, 춘하추동의 변화를 따르는 대자연의 웅장함과 그 속에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담담히 그려냈다. 8미터가 넘는 화폭 위를 흐르는 강물은 어쩌면 끊이지 않는 우리 민족의 생명력을 나타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두루마리 그림을 오른쪽으로부터 펼쳐가며 감상하면 마치 실제로 그림 속에 끝없이 이어지는 풍경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신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다양한 산, 강, 마을, 사람의 조화, 세밀한 표현, 생동감 있는 필치로 그려진 대작 관념산수화로서 국보 제193호로 지정되었다.
이 그림은 추사 김정희의 부친인 유당(酉堂) 김노겸(金魯敬, 1766~1837)을 위해 그린 것으로 알려졌는데, 김노겸은 이인문의 회화 활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던 인물이다. 미술평론가 오주석(1956-2002)은 “이 기념비적인 작품의 제작에 임한 이인문은 그 자신의 인생 황혼기에 처한 시점에서 평생의 신조로 간직해 온 유교적 세계관에 대한 믿음과 평생 쌓아온 회화적 기량과 개성을 이 작품 속에서 총체적으로 표출하고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또한 그는 이 그림이 “극도로 작은 인간이 거대한 자연보다 결코 가벼운 존재가 아님을 웅변하고 있다”고 그림의 의미를 해석했다.
위의 부분도에는 단풍이 곱게 물든 가을날, 큰 바위산 아래의 작은 마을에 나그네들이 도착하여 나귀를 세우고 잠시 쉬어가는 모습, 사람들이 정자에 모여 담소하는 평화로운 모습이 그려져 있다. 오른쪽 큰 바위산 위의 사찰로 아랫 마을에서 물건을 올려 보내고 있는 도르래가 보이고 왼쪽의 큰 바위산은 마치 신하가 고개를 숙이며 홀(笏)을 잡고 있는 듯하다.
감정과 사유(思惟)를 담아내는 남종화풍과 북종화풍의 절충적 화평으로 그려진 이 그림은, 먹빛과 여백의 조화, 맑고 부드러운 필치로 자연을 정밀하게 그렸으며 절제된 색채 속에서 자연의 기운이 은은히 드러난다. 중국 북송시대의 화가 왕희맹(王希孟)은 당시 황실의 심미적 요구를 반영하여 끝없이 펼쳐진 상상 속의 강산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청록산수화인 <천리강산도(千里江山圖)>에서 화려한 색채로 그려냈다. 이에 비해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는 인위적인 화려함보다는 은근한 서정성을 느끼게 해주어 조선의 은근한 품격이 드러난다.
위의 시조에서 ‘별유천지비인간’은 ‘별천지가 있으니 인간세상이 아니구나’라는 뜻으로 이백의 시 <산중문답(山中問答)>에 나오는 구절이다. 오늘날 우리가 웅장하고 깊은 자연 속에 서 있을 때 느끼는 경외감 역시 이인문이 화폭에 담고자 했던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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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용 교수 (메릴랜드대 화학생명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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