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염불서승도(念佛西昇圖)
▶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1745-1806) (염불하며 서방정토로 오르다) 간송미술관
가냘픈 노스님 얇은 장삼 걸치시고
연화 구름 위에 앉아 서방정토(西方淨土) 향하시네
밝은 달 스님 앞길 환하게 밝혀주나
스님의 앞모습이 우리를 밝혀주나
단정하게 앉으신 그 모습 뒤로하고
말씀은 없으셔도 가르침 남기시니
탐욕의 바다에서 헤매지 말 것이며
번뇌의 사슬을 끊으라 하시네
서방정토는 불교에서 서쪽으로 십만 억의 깨끗한 국토를 지나면 있다는 번뇌와 고통이 없는 아미타불의 이상향(理想鄕)이며 넓은 의미에서 부처의 세계를 뜻한다. 이 그림은 해탈한 노스님이 구름 위의 연화대(蓮花臺)에 앉아 서방정토로 향하는 뒷모습을 그린 도석인물화(道釋人物畵)로, 모시 위에 엷은 채색으로 단원이 만년에 그린 격조 높은 명작이다(단원은 노년에 단로(檀老)라는 호를 썼음).
불교 신자 여부와 상관없이, 이 그림 앞에 서면 그림에서 느껴지는 경건함에 저절로 옷깃을 여미게 된다.
단원 김홍도는 뛰어난 재능으로 정조대왕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의 찬사를 받으며 당대 최고의 화가로서 인정받으며 살았다. 그러나 후원자였던 정조의 갑작스러운 사후(1800년), 고적(孤寂)해진 단원은 인생의 덧없음을 실감하였고, 병을 앓으며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전주의 시골에서 홀로 쓸쓸하고 궁핍하게 살았다.
이 그림은 마치 단원의 말년 심경이 반영된 듯하며, 흐르는 구름처럼 부드럽고 유연한 유운선법(流雲線法)을 사용하여 지극히 원숙한 경지에 도달한 화필을 보여준다. 종이나 비단에 그리지 않고 거칠고 청아한 질감의 모시를 택한 것은, 단원이 노승의 서방정토행을 그리기 위해 깊은 뜻으로 선택한 것이리라 생각해 볼 수 있다.
구름 위에 피어난 발그스레한 연꽃 위에 단정하게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노승의 모습은 마치 구름과 연꽃 속에서 피어나 열매를 맺은 듯하다. 이는 깨달음과 번뇌의 극복을 상징하며, 앞에 비치는 달빛을 안고 떠나는 모습은 그림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깊은 상념에 잠기게 하는데, 이 달빛은 어쩌면 노승의 두광(頭光)인지도 모른다.
스님의 파르르 깎은 머리와 가냘픈 목은 고뇌와 수행의 흔적을 더욱 깊이 느끼게 한다. 밝은 빛을 안고 가는 스님의 뒷모습은 짙은 색으로 그려졌지만, 그가 앉아 있는 구름 위의 연꽃은 아무런 그림자도 없으니, 이는 이미 영원한 빛의 세계로 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세상의 빛은 그림자를 만들지만, 본성의 빛은 그림자를 지우는 것일까?
속세의 탐욕과 번뇌 속에서 허우적대는 중생에게, 서방정토로 향하는 노스님의 뒷모습은 말없는 깨달음을 준다. 우리도 누군가의 떠나는 뒷모습에서 고요한 아름다움이나 서글픔을 느끼지 않았던가? 단원의 <염불서승도>는 ‘떠나는 뒷모습의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새삼 일깨워 주며 삶과 죽음, 번뇌와 해탈의 숭고한 순간을 느끼게 해준다.
18세기 조선 후기의 승려 괄허취여(括虛取如)의 시문집인 <괄허집(括虛集)>에 실린 <관심(觀心)>, 즉, ‘마음을 보다’라는 시가 있어 소개해 본다.
獨坐觀心海(독좌관심해)
홀로 앉아 마음 바다 바라보니
茫茫水接天(망망수접천)
한없이 아득한 물결이 하늘과 닿아있네
浮雲無起滅(부운무기멸)
뜬구름 일어나 다함이 없고
孤月照三千(고월조삼천)
외로운 달 삼천세계(우주의 모든 세계) 비추는구나
이 시는 수행자가 마음속을 들여다보며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쓴 것으로, 단원의 <염불서승도>가 지닌 고요한 정신세계와 깊이 맞닿아 있다. 불교도가 아니더라도 이 시와 단원의 명작 그림 <염불서승도>는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을 잠시 멈추고, 인생과 자연, 존재의 본질에 대한 사색을 하게 해준다.
그동안 ‘이야기 가득한 조선의 명화’를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최규용 교수 (메릴랜드대 화학생명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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