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만 해도 백화점에서 마음에 드는 옷이나 가방을 골라놓으면 거의 “메이드 인 코리아” 꼬리표를 달고 있었다. 그것은 아직 한국에의 취향이 남아있고 가격도 별로 부담스럽지 않아서일 수도 있지만 한국상품 수출길이 순조로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 호황은 90년 중순부터 사라지고 중국, 남미, 러시아 등 낯선 나라에서 만든 제품들이 백화점, 할인매장, 노점상 가판대를 메우기 시작했다. 국산 여행가방, 앨범, 장난감 등에서 시작된 한국 상품의 퇴출은 한국산 섬유제품을 메이시 백화점에서도 실종시켰다.
상품의 질 저하, 제 3국의 값싼 노동력 등등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이에 따라 한인 스몰 비즈니스로 각광받던 잡화업에도 타격을 가져왔다. 또한 책가방, 장난감, 모자, 팬시 아이템 등을 취급하는 구멍가게를 일시에 몰아낼 듯 동네밖에 있던 대형 스토아와 99센트 할인 스토아들이 동네 안마당까지 들어왔다.
한국의 IMF이후에는 “100% 순수한 한국물건만 팝니다”라는 가게가 우리 동네 안에도 생겨 가끔 그곳을 갔었다. 그곳에 가면 발목에 오는 신앙촌표 여름용 살색 양말, 색칠을 한 효과가 금방 나는 한국 크레파스, 노란 광택이 예쁜 알루미늄 냄비, 나무빨래판 등등 미국 가게에는 절대로 없는 것들이 있었다.
마치 영등포나 신림동 시장에 온 듯 친근한, 한국인만이 애용하는 살림살이들이 있었다. 고객용 카드를 만들면 다음에 구입할 때는 10% 할인까지 받는 재미가 있었는데 며칠전 가보니 폐업 후 미용실로 변해 있었다.
그 가게뿐 아니라 폐업, 전업하는 가게가 늘고있어 관련 업종 모임에서는 불황타개 대책에 고심하고 있다. 가게 위치에 따라 소비자의 선호도를 파악하고 고객의 입장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연구하는 등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 살벌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으려고 안간힘 쓰고 있다.
그런데 최근 주위에선 아직 이런 일이 생기고 있다.
“큰 가방이 필요해서 여러 미국 가게를 돌아다녀도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한국 가게에 가면 취향에 맞는 것이 있겠다 싶어 일부러 플러싱으로 갔더니 역시 딱 마음에 드는 것이 있어 구입했다. 그런데 집에 가서 보니 비슷한 가방이 있어 다음날 바로 바꾸러 갔다. 그런데 그전날 상냥하던 사람들이 바꾸러 왔다니까 표정이 떨떠름하더니 다른 가방 가격을 물어보아도 건성으로 대답할뿐 아니라 이틀전보다 2배 가격으로 부르기도 했다.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니 크레딧으로 주겠다고 했다. 우리 집은 그 가게와 멀다. 돈을 더 주고 다른 물건으로 바꿔왔지만 두 번 다시 그곳으로 가지 않겠다.”
사실 나 역시 미국에 와서 좋았던 점이 백화점이고 할인매장이고 영수증만 있으면 일정기간 안에 눈치안보고 당당하게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었다. 고객이 현금으로 물건을 사더라도 한인업주 99%는 일단 주머니에 돈이 들어가면 절대로 도로 나오지 않는다.
한국가게에는 ‘크레딧 카드나 체크는 받지 않습니다’고 명시된 곳도 있다. 물론 요즘 장사가 안되어 폐업이냐, 전업이냐 기로에 서있고, 부도 수표받은 경험도 많은데다 사간 물건을 오랜 기간 지나서 사지 않겠다고 하면 반갑지 않을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은 물건은 일정 기간 안에 반드시 돈으로 돌려드립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해 보면 어떨까.
한인들은 체면을 중시하여 정말로 돈으로 돌려주었다면 웬지 신세 진 기분이 들어 다음 번에 일부러 그 가게를 찾아갈 것이다. 그리고 다른 손님도 끌고 갈 것이다.
고객이 이것저것 만져보고 묻고 또 물어 대답하기 귀찮아도 장사하러 나온 사람이 그것도 안하면 무얼 하겠는가. 고객의 입장에서 보면 장사하는 사람은 첫째도 친절, 둘째도 친절, 셋째도 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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