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족사진이 한 장 있다. 그것은 결혼 5년 차, 우리 딸 예원이의 100일 때 찍은 우리식구의 가족사진이다. 결혼 후 1,2년이 지나면서 늘 나는 남편에게 가족사진을 찍자고 하였고 남편은 둘이서 찍은 사진은 가족사진이 아니라면서 ‘아이가 태어나면’ 찍자고 하였다.
나의 부모님은 내가 열 다섯, 중학교 2학년 때 나도 모르게 이혼을 하셨다. 그때 두분은 별거 중이셨고 나는 할머니 댁에 보내어졌었기에 나 몰래 두분이서 해결(?)하신 것이다. 늘 정직을 강조하셨던 부모님이셨기에 그 일은 내게 충격이었고 커다란 배신감이었다. ‘어떻게 엄마 아빠가 나 몰래 이러실 수가 있지? 결국 나도 알게 될텐데 어떻게...’. 또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했다. 오랫동안 아빠께선 정치에 관심을 두고 모시고 있던 국회의원이 있어서 가정보다 일이 우선이었고 엄마는 커다란 하숙집을 하면서 끝도 없는 아빠 뒷바라지에 지치셨기에 이상하리 만치 두분의 이혼 소식 후 빠르게 이해가 되었던 것이다.
20대 초반의 어느 해에 한번은 용산 시민공원으로 피크닉을 갔는데 어떤 아버지가 아이들과 앉아있는 아내를 위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왠지 그때 ‘저 아저씨도 들어가야 할텐데’ 싶어서 묻지도 않았는데, “아저씨 제가 찍어 드릴께요” 하고 나서고 말았다. 환하게 웃으시며 고마워하는 부부와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다정히 서로를 향해 고개를 기울인 그분들의 가족사진. 이미 그분들의 얼굴은 기억에 없지만 화창한 봄기운과 파릇했던 잔디와 카메라를 돌려드릴 때 눈물 가득한 날 보시며 어색해 하시던 아저씨의 모습은 아직도 내 기억에 선명하다.
가족사진. 어렸을 때 내가 결혼을 하리란 생각은 못하면서도 아마 그때부터 가족사진을 꼭 찍고 싶었을 게다. 그리고 그날 이후 그것은 나의 가장 큰 소망 중 하나였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말미암아 결혼에 늘 부정적이던 나에게 이제는 ‘나의 가정’이 생겼다. 이젠 어느 가정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닌 내가 주체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나는 열심히, 참 나름대로는 열심히 ‘우리 가정’이란 집을 하나씩 공사중에 있다. 중간 중간 기도와 아름다운 소망들로 미장을 하면서…. 앞으로 더 많은 가족사진을 찍으려한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