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일찍 잠자리에 든 탓인지 새벽 2시반께 잠이 깼다. 창 밖을 내다보니 앞에 24층 빌딩이 나란히 서 있는데 한 곳은 전혀 불빛이 없고 다른 한 곳엔 딱 한 방에만 불이 켜져 있다. 전등이 환히 켜있는 고층 건물은 한 곳도 없었다.
가져온 책을 읽다가 깜빡 잠이 들어 6시반께 다시 깼다. 습관적으로 TV를 켜봤다. 평양 TV는 아침 프로그램이 없는 줄 알면서도 오랜 미국 생활의 습관 때문에 뉴스를 들으려고 TV를 켜게된다. 평양 호텔에 묵으면 외부 세계와 단절되게 마련이다. 국제전화와 팩스로 외부와 연락은 가능하나 바깥 세계의 소식은 쉽게 얻을 수 없다. 라디오를 켜니 평양 중앙방송이“김정일 장군”찬가를 내보내고 있었다.
7시경 로비에 내려가 일행과 호텔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오늘 조반 메뉴는 계란 2개, 흰 빵, 커피, 그리고 베이컨이 없는 탓인지 캐나다 햄 식으로 요리된 고기 조각이 나왔다. 오늘은 주스도 없어서 판타(Fanta) 한 병을 사서 이선생과 나누어 마셨는데 값이 1달러였다. 평양에서 잘 알려진 신덕 샘물은 한 병에 70센트였다.
안내원이 오늘의 관광일정을 브리핑했다. 오전에 만수대 창작사를 보고, 옥류관에 서 평양냉면으로 점심을 먹고, 호텔에 돌아와 휴식한 후 오후에 모란봉으로 가서 을밀대, 칠성문, 최성대를 구경한다고 했다.
우리 일행 4명이 전용으로 쓰는 미니버스가 곧 도착, 창작사로 향했다. 안내원은 이곳에 8개의 창작단과 5개의 제작단이 있고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화도 이곳에서 제작된다고 설명했다. 전시장으로 쓰는 한 건물 1~2층에 공훈 또는 인민화가가 그린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기념품을 구입할 수 있다기에 나는 선물용으로 도자기 한 점과 찻잔 받침 접시 3점을 샀는데 자그마치 55달러나 지불했다. 창작사에서는 사진을 마음대로 찍게 했지만 촬영 대상물이라고는 김일성과 김정일, 그리고 김정일의 어머니인 김정숙의 초상화 및 창작사 건물들이 고작이었다.
창작사에서 옥류관으로 가기 전에 낙원백화점에 들렸다. 이 백화점은 1990년 봄, 부부동반으로 평양에 왔을 때 봤던 곳인데 그때보다 상품이 훨씬 많았고 종류도 가정용품, 전자제품, 의류, 구두, 아동용품, 학용품 등 다양해졌다. 값은 미국의 두 배쯤 되는 것 같았다. 구두 한 켤레가 140원(70달러), 양말 한 켤레가 3~5원, 콘 비프 한 캔이 3원50전이었다. 거의가 수입품이니 비쌀 수밖에 없다.
처삼촌 묘 벌초하듯 백화점을 둘러보고는 옥류관으로 갔다. 이미 많은 손님들로 붐비고 있었다. 안내자는 냉면을 먹으려는 재일동포 손님이 많아 예약이 안됐더라면 식사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생색냈다. 조선식 기와집인 옥류관은 겉벽이 시멘트로 돼 있고 파란색 칠이 입혀져서 청기와 집을 연상케 했다.
해외동포인 덕분에 특실에 안내됐고 주문도 빨리 받아갔다. 시중드는 여자들이 매우 친절했다. 안내자와 운전기사까지 6명이 먹었는데 계산서를 보니 52달러였다. 전과 낙지볶음에 아사히 맥주도 한 병씩 마셨지만 그리 호사스런 점심은 아니었다. 시중든 여자에게 10달러를 팁으로 쥐어주니 너무 좋아 어쩔 줄 몰라했다. 버스 앞까지 배웅해주며“또 오십시오”라며 깎듯이 인사했다. 일행이 모아 준 10달러는 그녀가 두 달을 뼈빠지게 일해야 얻을 수 있는 거금이다.
호텔에 돌아와 잠시 쉰 후 다시 버스를 타고 모란봉으로 향했다. 이 버스는 하루에 20달러를 내고 렌트한 것인데 주행거리에 관계없이 그 액수를 지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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