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의 법정 드라마는 우리 영화계가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가 아닐까. 검사와 변호사의 논리정연한 법정 공방, 원고와 피고 그리고 증인의 말에 따라 드러나는 범죄의 진실, 이를 바라보는 방청객과 배심원의 감정 변화까지..
이보다 더 극적인 인생 드라마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싶다. 할리우드 법정 드라마의 지적 재미를 맛본 이들이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실제 재판을 보고 심심하고 실망스러웠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할리우드가 자랑하는 법정 드라마 목록의 최상위권에 속할 고전 한편이 출시되었다. 시드니 루멧의 1957년 작인 흑백 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15세, 폭스)이 그것이다.
루멧 감독은 1954년에 방영된 이란 인기 법정 TV 드라마를 썼던 레지날드 로지의 빼어난 각본에 힘입어 성공적인 감독 데뷔를 했다.
회의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12명의 배심원이 벌이는 설전만으로 영화를 끌어간 솜씨는 감탄스럽다 못해 존경스러울 정도다.
성격과 이해 관계가 다른 인물을 폐쇄 공간에 몰아넣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설정은 <특전 U보트> <크림슨 타이드> 같은 잠수함 영화나 방송국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한 <웰컴 미스터 멕도날드> 등에서도 멋지게 활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12명...>의 배경과 인물 구도에 비하면 운신의 폭이 넓은 액션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2명...>은 1957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작품, 감독, 각본상 후보에 올랐고 1997년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이 TV용 드라마로 다시 만들었을 정도로 탐나는 영화다. <12명.>의 배심원이 중상층 백인 남성으로만 구성된 데 비해 리메이크작에는 흑인, 여성, 남미계까지 포함되어 있어 시대 변화를 읽을 수 있다.
<12명...>은 유죄 판결을 내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불리한 정황에 놓인 살인 용의자에 대해 ‘이유있는 의심’(reasonable doubt)을 던지며 토론을 통해 상대를 설득하고 마침내 민주주의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과정을 낱낱이 담고 있다.
웅장한 법원 건물을 올려다보는 카메라의 시선. 법원 내부의 바쁘게 돌아가는 상황을 커트없이 훑으며 카메라는 228호 법정으로 들어간다. 판사의 심각한 충고.
"1급 살인, 계획 살인은 중범죄다. 이미 한 사람이 죽었고, 이제 한 사람의 목숨이 여러분 손에 달렸다. 판결은 만장일치에 한하며 일단 유죄 판결이 내려지면 번복은 있을 수 없으며 오직 사형 집행 뿐이다." 겁에 질린 용의자의 커다란 눈망울을 뒤로 하고 12명의 배심원이 판결을 위해 자리를 옮긴다.
밖으로 잠긴 작은 사무실. 찌는 듯한 더위에도 불구하고 선풍기조차 돌아가지 않는다. "나는 졸았다.
이처럼 명백한 사건에도 변호사는 말장난 뿐이군. 시간과 돈 낭비야"라고 투덜대는 뚱뚱하고 거만한 사나이(리 J. 콥)가 있는가 하면, 빨리 끝내고 야구장으로 달려가야 한다는 세일즈맨(잭 와덴), 신문에서 증권 시황을 살피는 브로커(E. G. 마샬) 등, 한결같이 명백하게 보이는 살인사건으로부터 빨리 벗어났으면 한다.
창 밖을 내다보며 생각에 잠겨있던 단 한명의 배심원(헨리 폰다)이 무죄 쪽에 손을 든 최초 상황으로부터 12명 전원의 판결 유보로 매듭지어지기까지 영화는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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