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지점프를 하다’
▶ 그에게서 죽은 옛여인의 향기가...
"다시 태어나도 너만을 사랑할거야."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면 이 말을 몇 번이고 하고 싶겠지만, 어떤 이들은 아마 이런 말을 했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할 것이다.
한평생 살다 보면 한번쯤 거역할 수 없을 사랑을 만날 수도 있다. 1983년 어느 비오는 여름날은 인우(이병헌)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우산을 씌워 달라며 다가온 태희(이은주). 젖은 것은 어깨만이 아니다. ‘운명적 사랑’이 그의 가슴에 촉촉히 스며든 것이다.
인우는 태희를 만나기 위해 버스 정거장에서 매일 몇 시간씩 기다려도 봤지만 결국 태희는 같은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역시 인연이었다.
갑자기 뛰어온 남자가 운동화끈을 조여 줄 때 감격하지 않을 여자가 있을까. 둘은 사랑하고 또 싸운다. "나 연애 때 말이지." 이렇게 시작하는 선생님의 옛 연애담처럼 세월의 때가 조금 묻은 사랑 이야기는 간지럽게 재미있다.
둘이 결혼까지 갔다거나, 아니면 눈물을 머금고 헤어졌다면 이 영화에 그다지 주목할 필요가 없을 지도 모른다. 바닥 가까이서 다시 튕겨 오르는 번지점프처럼 영화는 새로운 판타지로 도약한다.
2000년 인우는 고교 국어 교사가 됐다. 이제 그는 딸아이와 아내를 가진 가장이며 학생들로부터 ‘꼰대’라는 소리 대신 ‘선생님’ 이란 소리를 듣는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
그의 삶이 통째로 흔들리는 것은 남학생 현빈(여현수)에 대한 ‘이상한’ 감정 때문이다. ‘젓가락은 시옷 받침인데, 왜 숟가락만 디귿 밭침이냐" 고 묻거나 음료수를 마실 때 새끼 손가락을 쭉 펴는 사람. 인우는 보았다. 현빈에게서 태희의 모습을.
대체 태희와 현빈 은 무슨 관계일까. 왜 현수의 목덜미를 만지고 싶고, 그의 여자친구 혜주(홍수현)가 미워지는 것일까.
추락과 상승, 죽음과 탄생을 경험하는 번지점프처럼 영화는 인연과 윤회라는 소재를 매우 사실적인 감정의 고리로 풀어냈다.
지나간 사랑과 금지된 사랑을 씨줄과 날줄로 엮으면서 인연과 환생에 관한 아름다운 ‘판타지 직물’을 만들어냈다. 감칠맛 나는 유머, 탄탄한 복선, 완급을 조절하는 연출력이 직물을 더욱 짜임새 있게 만든다.
배우 이병헌은 ‘서인우’ 역을 매우 자랑스러워 할 게 틀림없다. 애타게 태희를 찾지만 막상 앞에서는 제대로 한마디도 못하고, 간신히 여관에 들어가서도 밤새 딸꾹질만 하는 순진한 대학생, 아니면 현빈에게 전화를 하면서도 몇 번이나 호흡을 가다듬어야 하는 ‘이상한’ 선생님의 모습을 이병헌은 잘 소화했다.
데뷔 이후 10년간 연기에 대해서는 별반 호평을 받지 못했던 그였다. 하지만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호연을 보이더니 ‘번지점프.’에서는 한단계 더 도약했다. 흔히 "연기에 물이 올랐다"는 말은 지금의 이병헌에게 꼭 어울리는 말이다.
예술적 성취도를 차치하더라도 탄탄한 스토리와 연출력(감독 김대승), 연기력만큼은 지난해 말부터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멜로 영화 중 단연 선두에 설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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