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년 올림픽 스키 금메달 존슨, 사고로 혼수상태
지난 3월 22일, 몬태나주 빅마운틴 리조트에서 개최된 전미알파인 선수권대회에서 미국 스키계의 백전노장 빌 존슨이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는 최악의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TV화면을 통해 경기장면을 지켜보던 시청자들은 존슨이 급강하 커브면에서 중심을 잃고 펜스에 곤두박질치는 광경을 보며 경악했다.
빌 존슨의 기구한 인생역정을 아는 많은 스포츠 팬들은 이번 사고에 대해 애석한 마음을 금치 못했다.
올해 41세가 된 존슨은 1984년 사라예보 동계올림픽에서 미국 스키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한 미국스키계의 산증인이다.
그때만 해도 세계스키계는 유럽선수들의 독무대였을 뿐, 미국선수들은 감히 명함도 못내밀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84년 올림픽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존슨은 유럽선수들의 틈바구니에서 0.27초라는 간발의 차이로 우승을 차지했다.
공교롭게도 존슨의 인생은 빛나는 올림픽 금메달을 정점으로 급격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우승당시 170파운드였던 체중이 급격히 불어났을 뿐 아니라, 이듬해 봄부터 무릎과 등부상이 겹쳤다. 그후 존슨은 다시는 스키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했고. 그것으로 올림픽 무대와도 끝이었다.
낙담한 존슨은 1989년에 스키계에서 은퇴했다.
은퇴이후 존슨의 삶은 실의의 연속이었다.
직장을 전전했고 마지막으로 시도했던 프랜챠이즈 사업도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13개월된 아들이 익사하는 불행까지 겹쳤다. 삶의 투지와 의미를 완전히 잃은 존슨은 아내 지나에게 "내년에 내가 다시 스키로 유명해지면 다시 만나자"는 말을 남기고 가족을 떠났다. 존슨은 13년간 살아온 조강지처와 이혼하고 두 아들과도 헤어진 후 인생최악의 암흑기를 보내고 있었다.
존슨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불혹의 나이에 다시 스키계에 컴백했다. 그리고, 스키계에서 재기해야만 아내와 재결합하고 헤어진 아들들도 만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사고가 난 이번 대회는 존슨이 컴백한지 6개월째 일이었고, 특히 이번시즌 마지막 열리는 레이스였다.
이 운명적인 전미알파인 선수권 대회에서 존슨은 상위 5위권에 진입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열리는 2002년 동계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상위랭킹 5위권 진입이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존슨의 오른쪽 팔에는 ‘스키장에서 죽는다’라는 문신까지 새겨져 있었다.
사고당일 존슨은 스타팅 라인을 출발한지 1분도 채 안되어 커브 급강하길에서 밸런스를 잃었다.
스키가 평행선을 벗어나면서 존슨의 몸은 시속 50마일의 속도로 나뒹굴었다. 처음에는 그의 얼굴이 콘크리트처럼 견고하게 얼어붙은 눈얼음과 충돌했고, 이어 온 몸이 두겹으로 된 보호망에 부딪히며 나뒹굴다가 펜스의 마지막 부분에서 멈췄다.
관객들의 귀에 "나 좀 도와달라"는 존슨의 신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잠시후 경기장에 대기하고 있던 의사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존슨은 이미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는 머리에 두 곳의 중상을 입었고, 혀가 거의 두동강나 심하게 부어오르면서 기도를 차단하고 있었다. 또한, 그의 왼쪽 폐에 피가 차올랐고, 골절된 두개골 아래쪽 뇌인접 부위에도 피가 응고되고 있었다.
존슨은 순식간에 날아 온 구조헬기에 의해 병원으로 후송되어 응급처치와 신경외과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으나 그는 여전히 혼수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계속 생사가 불투명한 상태다.
사고당일 저녁, 존슨의 오랜 친구이자 코치역활을 해 온 존 크릴은 존슨이 스키장에 몰고갔던 픽업트럭을 회수하기 위해 그곳으로 갔다. 1984년식 포드 F-250인 존슨의 트럭은 그가 올림픽에 우승한 것을 기념으로 구입한 것이었다.
존슨은 트럭의 차체에 녹이슬고 부서질 때까지 차를 바꾸지 않고 이 트럭만 이용해 왔었다. 크릴이 운전석에 올랐을 때 작은 가죽가방 하나가 발에 채였다. 그안에는 존슨이 1984년에 획득한 올림픽 금메달이 들어있었다.
존슨의 전 아내 지나는 사고직후 급히 몬태나 북서부의 칼리스펠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녀의 손에는 존슨의 41회 생일을 축하는 생일선물이 들려 있었다. 두 사람은 지난해 이혼한 후에도 여전히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지나는 연신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존슨은 올림픽에 출전하여 다시 유명해지면, 우리 가족들이 재결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 왔다"
지나는 말했다.
존슨과 지나의 12년 결혼생활은 마치 유목민들의 삶과 같았다. 12년간 이사를 열 한번이나 했고, 그 대부분을 이동식 트레일러 주택에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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