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필하모닉에서의 마지막 시즌,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는 구스타보 두다멜 음악감독이 오는 6월7일까지 3주간의 폐막기념 공연들을 지휘하고 있다. 지난주 바그너의 ‘발퀴레 I, II, III’을 두 차례 완성한 그는 이번 주말 2개 프로그램을 더 연주한 후, 다음주에 4회의 작별 콘서트를 끝으로 17년의 왕성하고 화려했던 LA필 음악감독의 여정을 마감한다.
지난 주 LA 필하모닉은 떠나는 두다멜에게 2개의 새로운 직함을 안겨주었다. ‘예술문화 명예감독’(Diane and M. David Paul Artistic Cultural Laureate)과 ‘LA청소년오케스트라(YOLA)’ 창립감독 겸 명예지휘자(Jane and Michael Eisner Founding Director and Conductor Laureate)’가 그것이다. 또 얼마 전 열린 USC 졸업식에서 두다멜은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3년 전 그가 뉴욕 필하모닉으로 이적한다는 뉴스가 나왔을 때만 해도 아직 먼일이라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마침내 그날이 온 것이다. 하지만 두다멜은 여러 인터뷰를 통해 이것은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모험의 시작일 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계속 새로운 프로젝트들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한 그는 “당장 다음 시즌인 12월에도 2주간 이곳에 와서 베토벤 프로그램들을 지휘할 것이고, 내년 5월에도 다시 올 것”이라며 즐거워했다. 그에게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할리웃 볼은 말할 것도 없다.
지난주 사흘 동안 두다멜이 지휘하는 ‘발퀴레 I, II, III’을 연이어 감상했다. 총 4시간에 달하는 3막의 오페라를 하루에 1막씩, 3일에 걸쳐 연주한 특별한 공연이었다. 관객들은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바그너 오페라를 사흘 동안 여유 있게 감상할 수 있었고, 오케스트라와 가수들은 그 힘든 바그너 음악을 충분한 기량으로 노래할 수 있어서 편안하게 느껴졌던 연주였다. 두다멜과 LA 필은 2022년에도 5시간에 육박하는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3일에 걸쳐 연주한 적이 있어서 낯설지 않은 시도였다.
‘발퀴레’(Die Walkyre)는 ‘니벨룽의 반지’ 4부작(라인의 황금, 발퀴레, 지크프리트, 신들의 황혼) 중 가장 인기가 많고 독립적인 공연도 많이 이루어지는 오페라다. 쌍둥이 남매의 사랑과 죽음, 복수와 결투, 최고신 보탄의 고뇌와 절망 등 굉장히 극적인 씬이 많다.
특히 3막에 나오는 ‘발퀴레의 기행’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곡으로, 호전적 여신들인 발퀴레들이 말을 타고 달리며 ‘호요토호, 헤이아하’ 함성을 내지르는 이 음악은 특유의 웅장하고 장쾌한 곡조 때문에 여러 영화와 광고음악에서 사용되었다. 가장 유명한 것이 코폴라 감독의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 미군이 베트콩 마을을 무자비하게 공습하는 장면에 삽입된 것이다.
두다멜은 지난해 클래식음악 지휘자로는 처음으로 세계최대 팝 축제인 ‘코첼라 페스티벌’ 무대에 올랐는데, 거기서 15만 관중이 “LA필! LA필!”을 연호하는 가운데 연주한 곡들 중 하이라이트가 바로 이 ‘발퀴레의 기행’이었다.
한편, 무엇보다 이번 ‘발퀴레 I, II, III’ 공연이 특별했던 건 지난 12월 타계한 불세출의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죽기 전에 남긴 환상적인 무대 디자인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예술적 식견이 뛰어난 게리는 라크마(LACMA)와 함께 전시 설치작업도 많이 했고, 오페라 무대디자인에서도 남다른 통찰력을 발휘했는데, 2년전 두다멜의 링 사이클 1편 ‘라인의 황금’의 세트도 그가 디자인했으니, 2편 ‘발퀴레’ 무대는 자연스럽게 이를 연결하는 구조물로 세워졌다.
디즈니 홀은 오페라하우스가 아니라 콘서트홀이지만, 게리는 자신이 지은 공간을 스마트하게 변형해 독창적인 무대로 재창조했다. 뒤편의 합창석을 모두 들어내고 만든 입체적 무대는 오케스트라 전체를 감싸 안고 청중까지 하나로 품으며 음악적 경험이 더욱 역동적으로 느껴지는 효과를 냈다. 디즈니홀 내부와 같은 색의 전나무 사각박스들로 무대를 꾸민 세트 위에 흰색의 종이덩어리들이 거대하게 구겨져 설치된 빙산은 신들의 거처(발할라)를 거칠고 원초적인 추상의 공간으로 표현했고, 조명에 따라 폭우 치는 하늘로, 불길의 벽으로 변모했다.
정말 좋았던 건 오케스트라 연주였다. 두다멜과 LA필은 감탄이 절로 나오는 최고 기량의 연주를 들려주었다. 전통 오페라무대가 아니었기에 오케스트라가 피트에 들어가지 않아서 대편성의 바그너 음악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고, 두다멜은 가수들이 무대 어디에서 노래해도 모든 소리가 명료하게 들릴 정도로 관현악 소리를 세밀하게 조절했다.
가수들도 대단했다. 2년 전 ‘라인의 황금’에서 보탄역을 맡았던 라이언 스피도 그린이 이번에도 보탄이 되어 포효하고 절규했고, 바그너 전문가수로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는 크리스틴 괴르케가 브륀힐데 역을 맡아 열연했다.
바그너 오페라는 어렵고 장중하여 대중적이지 않은데도 3일 공연이 만석이었다. 두다멜의 마지막 공연 중 하나여서인 듯하다. ‘라인의 황금’과 ‘발퀴레’를 마친 두다멜은 이어 앞으로 LA필과 함께 링사이클 전곡을 완주할 예정이다.
이 칼럼을 마감하던 중 LA필이 두다멜의 후임인 차기 음악감독으로 대니얼 하딩을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새로운 기대가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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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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