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세 칼리지 졸업등 미전국 화제 뿌렸지만 가정파탄, 부자결별.. 감옥서 회한의 상봉
지난 26일 샌타크루즈 카운티 교도소 앞에는 수많은 언론이 포진해 있었다.
지난달 15일 경찰과 스왓팀을 전화로 부른 후 4시간 동안 바닷가 자택에서 공포를 쏘며 난리를 피우다 체포됐던 어거스틴 디 멜로(71)가 풀려나는 장면 취재를 위해서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아들, 애드레건 데 멜로(24, 하이텍사 직원)와 그의 특별한 해후(?)를 집중 조명하기 위해서다. 경찰은 살상용 총기사용 죄에 대한 재판을 5월29일로 연기하고 방광암 말기의 그를 가석방하여 아들의 책임 속에 가택연금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들 부자에 시선이 집중된 것은 이들이 한때 미국 전체와 세계까지 떠들썩하게 만든 "신동과 야심 찬 신동 제조 아버지"였다는 것 때문이다.
어거스틴은 ‘천재인 내 아들을 16세까지 꼭 노벨상 수상자로 만들겠다"며 갓 태어난 아들에게 신동교육을 시켰다.
그의 요구에 부응하듯 아들 애드레건은 3세 때 이미 읽기와 쓰기를 매스터했고 10세인 1987년 2년제 칼리지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1년 후에는 편입한 UC샌타크루즈에서 컴퓨터 수학으로 학사학위를 따냄으로써 미국 최연소 대학 졸업생의 기록을 세웠다.
이들 부자 스토리는 80년대 전국적 뉴스가 됐고 ‘신동을 만드는 게 바람직한가’에 대한 찬반토론에 뜨거운 불을 붙였다.
그러나 문제는 그 후. 아들을 쉴새없이 닥달하는 것을 반대해 온 부인(캐시 건)은 급기야 어거스틴에게 이혼소송을 제기했고 판사는 애드레건의 양육권을 캐시에게 준 것이다.
아버지와 헤어진 애드레건은 이후부터 서니베일에서 엄마와 살면서 중학교에 다시 입학했다. 12세 때에야 그는 처음으로 야구방망이라는 것을 잡아봤으며 또래 아이들과 그 연령에 맞는 스포츠나 놀이도 탐닉하며 ‘강제로 빼앗겼던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다시 누렸다고 한다. 그러면서 대학 졸업 후 6년 뒤인 94년 홈스테드 고교를 졸업했다. 강압적이기만 했던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많아 거의 결별상태로 이제껏 지내왔다.
아들을 세계를 휘어잡는 위대한 인물로 키워내겠다며 전력을 다했던 어거스틴이 뜻밖에 닥친 아들과 아내의 내부 쿠데타에 지고 그 상실감을 어떻게 극복했는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단 13년 동안에 변모해 버린 그의 외모와 또 엉뚱한 총격난동 사건 등이 그가 절망의 나락 속에서 살아왔음을 입증하고 있다.
감옥 속의 아버지를 면회하면서 애드레건은 13년간 단절됐던 부자의 정을 다시 회복시키려 노력했다. 그는 지난 수주일간 계속 법정에 나와 홈리스 같은 모습의 죄수 아버지 모습을 지켜보며 고통스러워했다.
그는 이날 "비록 아버지의 야망의 서클 속에서 탈출했고 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지만 날 사랑했던 어버지의 변모로 내 가슴은 찢어집니다"라며 그는 "아버지의 여생을 이제는 내가 돌봐야 할 차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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