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예는 이렇게 죽음을 준비했다궁예: 이보게, 은부?
은부: 예, 폐하.
궁예: 모름지기 사내란 오고감이 깨끗하고 분명해야 하네. 내 어검(御劍)이 거기 있을 것이네.
은부: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폐하?
궁예: 그 검을 자네가 잠시 맡게. 그리고, 때가 되거든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자네가 알 것이야.
은부: (울며) 폐하.?
궁예: 자네의 마지막 소임이야. 그 어검을 받게.
은부: 예, 폐하. 어찌 영을 거역하오리까? 그리 뫼시겠나이다. 페하.
KBS 1TV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이환경 극본, 김종선 강일수 연출)을 이끌어 왔던 궁예는 오는 20일 방송될 120회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왕건이 이끄는 혁명군에게 궁을 빼앗기고 도주하던 중 포위된 상황.
왕건과 독대를 청하고 술잔을 비운 후 자신과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은부의 칼에 마지막 숨을 거두게 된다. 자결 아닌 자결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극중 상황이 비장함을 더해 준다.
지난 해 3월, 첫 방송이 나가기도 전에 <태조 왕건> 초반부는 궁예의 독무대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흘러나왔다. 예측은 적중했고, 오히려 그의 비중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는 탄식이 새어 나올 정도였다.
궁예는 신라 경문왕의 아들로 태어난다. 하지만 정쟁의 와중에서 한쪽 눈을 잃고 떠돌다가 세력을 모아 송악과 철원을 장악하고 결국 최고 권력자가 된다. 일련의 과정이 극화되면서 드라마는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궁예 역의 김영철이 보여준 신들린듯한 연기도 이에 한 몫 했다. 그는 "연기 인생 20년을 걸었다"는 각오로 뛰어들어 연기 인생 최전성기를 맞았다. 첫 회 궁예가 철원성을 공격하며 목에 핏발이 설 정도로 외치던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불꽃 같은 카리스마 연기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려줬다.
▲사실과 극적 허구, 그리고 궁예의 죽음최고 권력자의 반열에 선 궁예는 ‘고인 물은 썩는다’는 옛말을 일깨우듯 바른 말에 귀를 닫고 안으로만 파고 들어 결국 파멸의 길을 걷게 됐다.
<고려사실록>에 의하면 궁예는 현 평강군인 부양현에서 혁명 이튿날 보리 이삭을 베어먹다가 백성들에 의해 맞아 죽었다고 기록돼 있다.
그러나 이환경 작가는 "역사의 기록을 승자의 입장에서 쓴 것이라 생각한다"며 "드라마에서는 다시 상상을 더해 엮었다"고 말했다. 또한 "영웅의 삶을 살아온 궁예가 보리 이삭을 베어먹다가 맞아 죽었다는 기록이 오히려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덧붙였다.
궁예: 이보게, 아우
왕건: 예, 폐하.
궁예: 대업을 이루시게. 내가 못다한 북벌을 그대가 이루어야 할 것이야. 대제국을 이루시게. 그 말을 하고 싶어 아우를 보자고 한 것이야.
왕건: (울음 참으며) 폐하.?
궁예: 은부장군은 뭘 하는가? 이제 그만 갈 때가 되지 않았는가?
은부: 예. 폐하. 용서하시오소서.
(어느새 은부는 칼을 뺐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궁예를 벤다. 그야말로 찰나였다.)
궁예: 아우, 부디 성군이 되시게. 성군이.
▲궁예 이후의 <태조 왕건>총 184회로 예정돼 있는 <태조 왕건>은 궁예의 죽음으로 일대 전환을 맞이하게 됐다.
안영동 책임프로듀서는 "극 흐름이 자연스럽게 백제로 넘어가며 견훤이 중심 인물로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밝혀 앞으로의 극 전개를 대충 예상하게 한다.
정치적 야망과 인간적인 고뇌 사이에서 갈등하는 또 한명의 난세 영웅 견훤의 모습에 후반부를 할애할 것이라는 말이다.
또한 <태조 왕건>은 대규모 전투장면을 몇 차례 더 준비해 볼거리를 제공한다. 연인원 500여명을 동원, 왕건이 백제군에게 치욕적인 패배를 하고 여덟 공신을 모두 잃게 되는 대구 팔공산 전투와 견훤이 실각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안동 병산 전투 등을 통해 장쾌한 스케일을 연출할 계획. 전투 장면 뿐 아니라 삼국의 계략전도 볼 만하다.
백제가 태봉을 쓰러뜨리기 위해 구사한 전략을 역이용하는 왕건 측의 머리싸움도 시청자를 흥미롭게 할 것이 분명하다.
오태수 기자 ohyes@dailysport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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