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에 사는 47세의 어느 미국 여인이 3년에 걸쳐 25만달러에 달하는 금액을 회사로부터 횡령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굴지의 컨설팅회사에 컨설턴트로 근무하던 그녀의 연봉은 17만5,000달러였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해고당했지만. 업무상 해외 출장이 잦았던 그녀는 결코 적지 않은 이 금액을 3년에 걸쳐 출장비 명목으로 가짜 서류를 꾸며 받아냈다고 한다.
이 같은 사건은 관례에 따르면 18개월 정도의 실형이 주어져야 하는데, 샤핑중독이라는 공식적인 진단이 전문가에 의해 내려짐으로써 그녀의 형량이 많이 가벼워졌다고 한다. 그녀는 광적인 샤핑으로 만성 우울증을 다스렸다는 것이다. 심리학자 둘이 진단 내린 그녀의 이 병명 덕분에 그녀는 실형을 면하게 되었다. 그 대신 그녀에게 선고된 형은 5년간의 집행유예, 6개월간 주말에 집에서 근신, 6주간 구세군에서 자원 봉사, 3만달러의 벌금, 지속적인 카운슬링 치료, 그리고 신용카드 소유 및 사용 금지이다. 샤핑중독이라는 병명이 법정에서 형량을 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첫 번째 사건이라고 한다.
이 신문기사의 골자는 샤핑 중독이라는 병이 형량을 가볍게 하는 정상참작으로 쓰이는 것에 대한 타당성을 묻는 것이었다. 기사 제목도 ‘샤핑중독이라는 이유가 판사한테 먹혀들다’라고 붙여져 있어 은근히 비꼬는 게 엿보였다. 법이 부당하게 그녀에게 관대한 처벌을 내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시했다. 마약중독이나 알콜중독은 정상참작이 안 되는데 샤핑중독은 어떻게 정상참작이 되는가 하고 그 기사는 묻고 있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위법 행위에 대한 처벌의 목적 중에 하나가 그 사람이 다시는 똑같은 죄를 짓지 않도록 하는데 있다는 걸 상기할 때, 그녀에게 주어진 형벌은 아마 그녀에게 적합한 벌일지도 모른다. 계속해서 카운슬링 치료를 받을 수 있으므로.
그런데 그 기사의 한 대목이 며칠동안 나를 따라다녔다. 그녀가 샤핑중독에 걸리게 된 근본적인 계기를 언급하는 대목에 그녀의 아버지 이야기가 있었다. 그녀에게 차갑고 무관심하던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에게 보여준 유일한 사랑의 표시가 돈을 주는 것과 샤핑하라고 신용카드를 내주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시작된 샤핑 버릇이 대학시절에 심해졌으며, 첫 번째 결혼도 파경으로 몰고 갔다고 했다. 거기까지는 그렇다고 하자.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에게 준 상처 때문에 30대까지 그 후유증으로 광적인 샤핑을 하고 그에 따른 피해를 보고 살았다고 하자. 그러나 이제 그녀의 나이 47세. 불혹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할 나이는 아닌가.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자신의 행동에 부모를 끌어들였다는 게 가슴 아팠다. 아무리 심리학에서 이론적으로는 자란 환경이 평생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증명되었다고 하지만, 언제까지 자란 환경 탓을 할 것인가. 카운슬링으로 그녀의 샤핑중독이 치료된다 해도 ‘내 탓’을 인정할 줄 모르는 더 무섭고, 뿌리깊은 병은 그대로 남아 또 어떤 식으로 그녀의 인생에 영향을 줄 것인가. 그녀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라고 내 가슴을 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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