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웃.” “커-엇.”
여느 감독 보다 조금 긴 배창호감독의 사인이 오늘따라 경쾌하다. 영화 <흑수선> 촬영 현장에서 배감독의 얼굴은 좀 벌겋다. 뙈약볕에 그을린 얼굴만은 아니다. 영화 <황진이> 이후 작가주의를 표방하며, ‘궁핍의시대’를 스스로 택한 지 10년. 이제 그는 ‘주류 블록버스터’ 의 감독으로 메가폰을 잡았다. 1980년대 ‘한국의 스필버그’로 불리던 그가 10년 만에 안성기같은 ‘옛친구’와 이정재 이미연 정준호 등 요즘 스타들과 거제도에서 뒹굴고 있다.
“영화평론을하던 고 정영일씨는 <황진이>(1986년)를 보고 ‘한국영화의 쿠데타가 일어났다. 그러나 성공여부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물론 실패였다. 그 무렵 스타시스템에 대한 회의가 일었다. 저예산영화로 자화상도 그려보고 풍경화도 그렸다. 이제다시 신나게 대형벽화를 그려보고 싶다.”
벽화의 소재로 그는 6.25 당시의 거제포로 수용소를 택했다. 여행 길에 7억원을 들여 조성했다는 거제포로수용소 기념관을 둘러보고 생각했다. 연초 시네마서비스 투자하고, 태원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던 날, 그는 3년반 만에 끊었던 술을 다시 마셨다. 총 제작비도 40억원. “돈이어디 들어가는지 봤더니 이제는 ‘소 할리우드’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탑차, 분장차, 발전차, 소방차, 살수차 등 대단한 장비들이 다 있다. 저예산영화에서 형상화할 수 있는 단어가 100개 정도라면지금은 무지막지하게 많아진 것이다. (이런 장비를 갖고) 영화를 못 찍는 감독은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그럴수록 영화에 대한 강박은 커질 법도 하다. 한국전쟁을 다루면 너무 무거워 지거나 진부하지 않을까 하는. “전쟁은 상처인 동시에 기막힌 영화소재이기도 하다. 정치적으로 깊이 있는 터치 보다는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적 ‘운반수단’을 이용해 영상미에 치중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시나리오는 대사가 거의 없다. “15세 무렵의 소년들이 탈출을 시도하다 몰살당하는 장면이 있다. 전쟁은 그런 것이다. 영화 맨 마지막 ‘아, 이렇게 한국전쟁의 비극을 다루었구나’ 하는 느낌을 기대해달라.”
영화는 극사실과 가공의 중간,그래서 <풀 메탈 자켓>과 <디어 헌터>의 중간 같은 느낌을 전달할 것이다. ‘이태리 종마 같은’ 이정재, 50년의 사랑을 기억하는 남로당 스파이 이미연 보다 역시 13번째 작품을 함께 하는 안성기와의 작업이 가장 편해 보인다. “국내최장기수 포로를 연기하는데 다른 적역자는 없다. 30대의 모습을 걱정 했는데, 분장을 하고 보니 딱 ‘적도의꽃’의 미스터 M을 보는 것 같았다. 친구 같고, 동료 같은 배우다.” 안성기의 올해 나이 쉰, 감독 나이 마흔 여덟. 둘은 처음처럼 흥분해 있었다.
거제=박은주 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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