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테러 참사가 있은 지 나흘 뒤인 지난 15일 덴버발 워싱턴행 유나이티드 항공 여객기가 출발하기 직전 기장의 기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비행기에 탑승해 준 여러분의 용기에 감사드린다. 공항 검색이 강화된 것은 여러분이 다 아는 바이다. 비행기의 문이 닫히고 난 후 문제가 발생하면 우리 자신이 대처할 수 밖에 없다. 총이나 폭탄은 없을테니까 플라스틱이나 나무 몽둥이, 나이프가 무기로 쓰일 수 있다.”
기장은 자신의 룰에 따라 다음과 같이 행동해 줄 것을 부탁했다. “범인이 일어서서 ‘이 비행기는 납치됐다’고 말하면 여러분들도 모두 일어나 달라. 그리고 뭐든지 좋으니까 범인들에게 던지고 모포를 이용해서 그들을 덮쳐 주기를 바란다. 그러면 나는 가장 가까운 공항에 비행기를 착륙시키겠다.”
그는 또 “보통 납치범은 수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승객과 승무원은 200명 이상이다. 미국 헌법에는 시민은, 바로 우리들은 굴복하지 않는다고 되어있다”는 말로 방송을 끝맺었다. 감동한 승객들은 박수를 보냈고 어떤 승객들은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
이 비행기가 뜨면서 비행기에 탄 사람들은 비행기와 운명을 같이 한다. 만약 납치범들이 비행기를 납치하여 자살공격에 쓰면 승객과 승무원도 함께 죽게 된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게 될 바에야 죽기를 각오하고 테러범들과 싸워 이들을 제압하는 길 밖에 없다.
9.11 테러 당시 피츠버그 인근에 추락한 납치 비행기가 목표물에 자살테러를 성공시키지 못한 것은 승객들의 저항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목숨을 잃었지만 다른 수많은 목숨을 구해 주었던 것이다.
사람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 사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진다. 과거 노예시대나 봉건시대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지 못했으나 민주주의 시대에는 많은 자유와 인권을 누리고 산다. 6.25 때처럼 전시에는 비참한 생활을 했으나 평화시에는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또 같은 시대라고 해도 미국과 같은 부강한 나라와 아프리카의 오지와 같은 빈곤한 지역의 생활은 큰 격차가 있다. 같은 한반도 안에서 남한과 북한의 차이는 대단히 크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강대부국으로 평화와 번영을 상징하는 나라이다. 그 뿐 아니라 자유와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나라이다. 적어도 이번 9.11 테러가 발생하기 이전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이 테러는 미국의 위상을 흔들어 놓았다. 미국은 지금 또 다른 테러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있다.
테러는 마치 깡패와 같다. 대낮에 대로상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고 어두운 뒷골목에서 선량한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을 노린다. 이런 깡패로부터 피해를 당하지 않으려면 깡패를 경계하고 피하는 것이 1차적 방법이지만 그것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깡패 소탕령을 내려 모든 깡패를 잡아들이고 깡패들이 더 이상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선량한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야 한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는데 대하여 반대하거나 방관하는 나라는 결코 미국의 우방이 아닐 뿐 아니라 문명국이라고 할 수 없다. 줄리아니 뉴욕시장의 말대로 유엔이 테러의 위협을 막지 못한다면 더 이상 유엔의 존재이유도 없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미국에 테러가 계속되면 미국은 평화와 번영의 상징이 아니라 죽음이 나라가 될 수도 있다. 테러를 막는 문제는 미국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생존의 문제 앞에 남의 나라의 비난에 신경을 쓰거나 국내의 경제 및 일상생활의 어려움을 불평할 수는 없다. 테러국과 전쟁을 피하기 위해 타협하자는 것은 비행기를 납치한 자살테러범과 대화를 해보자는 것과 다름 없다. 미국인의 단결만이 이 위기를 구할 수 있다. 우리는 한 비행기를 탄 승객의 운명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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