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오프는 흔히 ‘제2의 시즌’으로 불린다. 정규시즌에서 1등을 했던, 턱걸이로 간신히 올라왔던 플레이오프에서는 완전히 동등한 위치에서 새로 싸우기 때문. 새로 시작한 경기에선 1등의 프리미엄도, 꼴찌의 핸디캡도 없다.
9일 시작된 메이저리그 플레이오프는 바로 이를 다시 한번 확인해줬다. 시즌 116승46패로 아메리칸리그(AL)는 물론 메이저리그 역사상 한 시즌 최다승 타이기록을 수립한 시애틀 매리너스와 93승69패로 내셔널리그(NL) 최고성적을 올린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디비전 시리즈 1차전에서 각각 AL과 NL 플레이오프팀중 가장 낮은 승률팀인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나란히 안방에서 발목을 잡혔다. 이어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시리즈에서도 정규시즌 전적이 열세인 다이아몬드백스가 먼저 1승을 따냈다.
화려한 정규시즌 전적의 매리너스와 애스트로스, 그리고 카디널스는 5전3선승제의 초단기 시리즈의 첫 경기를 빼앗기는 바람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졸지에 남은 4게임에서 3게임을 이겨야 리그 챔피언십시리즈 진출이 가능한 생존투쟁의 초비상이 걸린 것이다.
◎다이아몬드백스(1승) 1-0 카디널스(1패)김병현은 구경만 하면 되는 경기였다. 다이아몬드백스의 선발투수인 대선배 커트 쉴링이 마크 맥과이어가 이끄는 카디널스의 강타선을 3안타 무실점(탈삼진 9개)으로 철저히 봉쇄, 한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플레이오프의 무대에 올라선 김병현은 땀 한방울 흘리지 않고 첫 경기에서 승리의 기쁨을 안았다.
쉴링은 이날 에이스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여줬다. 팀 타선이 카디널스 선발투수 매트 모리스의 리그 최정상급 커브에 눌려 단 1점밖에 올리지 못했지만 쉴링은 타선 지원을 탓할 투수가 아니었다. 상대팀은 단 1점도 못 올리게 틀어막으면 되는 것이었다. 반면 카디널스의 모리스는 5회말 2사후 주자 2루의 상황에서 스티브 핀리에 적시타를 맞는 딱 한번의 실수에 울었다.
2차전서 랜디 잔슨을 만나야 하는 카디널스는 눈앞이 캄캄할 것이 분명하다. 다이아몬드백스가 지난해 팀의 유망주들을 3명이나 내주는 비싼값을 치르고 쉴링-잔슨 ‘원투펀치’를 마련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인디언스(1승) 5-0 매리너스(1패)인디언스 에이스 바톨로 콜론의 걸작품. 콜론은 메이저리그 최고의 라이업을 자랑하는 매리너스 라인업을 8회까지 삼진 10개를 곁들이며 산발 6안타로 영봉시켜 인디언스의 ‘반란’에 힘찬 시동을 걸었다. 인디언스는 0대0 동점이던 4회초 로베르토 알로마의 2루타를 시작으로 안타 5개와 포볼을 묶어 3점을 뽑아내며 승기를 잡았고 6회와 8회 1점씩을 추가, 세이프코필드를 가득 메운 4만8,000여 매리너스팬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매리너스는 믿었던 선발 프레디 카르시아가 4회 집중 5안타를 맞는 등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타선마저 침묵을 지킨 끝에 완패, 환상적인 정규시즌의 위업이 한순간에 날아갈 위기를 맞았다. 매리너스의 톱타자 이치로 스즈키는 이날 2루타 포함, 4타수 3안타를 쳤으나 승부의 흐름을 바꿀 수는 없었다.
◎브레이브스(1승) 7-4 애스트로스(1패)브레이브스 올스타 3루수 칩퍼 존스의 한방이 승부를 갈랐다. 3대3 동점이던 8회초 1사 주자 1,2루에서 타석에 들어선 존스는 애스트로스 클로저 빌리 와그너의 초구를 통타, 레프트펜스를 넘기는 결승 스리런홈런을 터뜨려 브레이브스에 귀중한 첫 승을 안겼다. 팀 역사상 아직도 포스트시즌 시리즈 승리가 없는 애스트로스는 이날 백전노장 그렉 매덕스가 선발로 나선 브레이브스에 4회까지 0대2로 뒤지다 5회말 브레드 어스무스의 투런홈런으로 동점을 이룬 뒤 6회말 한점을 추가, 3대2로 앞서며 투지를 불태웠으나 끝내 고비인 8회초를 넘기지 못하고 무너져 홈팬들을 실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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