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껏 맵시를 뽐내는 기와지붕들 사이로 질박한 초가지붕이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가운데 `술 주(酒)’자 깃발이 휘날리는 주막에서는 향긋한 술냄새가 주당들을 유혹하고 대장간에서는 풀무의 바람소리와 함께 담금질 소리가 요란하다.
죽물전과 지전에는 죽세공품과 오색종이가 수북이 쌓여있는가 하면 필방, 막사발전, 옹기전, 유기전, 미전, 야채전, 과일전 등도 저마다 물건을 갖추고 손님을 맞는다. 요즘 차림새를 한 스태프와 취재진이 아니라면 타임머신을 타고온 것으로 착각할 만하다.
민속촌보다 더 고풍스런 느낌이 나는 이 거리는 임권택 감독의 영화 ‘취화선(醉畵仙)’의 주무대. 10일 준공식을 갖고 비로소 고풍스런 자태를 드러냈다.
남양주시 서울종합촬영소에 마련된 ‘취화선’ 오픈세트는 천재화가 장승업(1843∼1897)이 화방과 기방을 오가던 100여년 전 서울 종로의 `피맛길’(양반의 행차를피하기 위해 서민들이 다니던 길)을 재현한 것으로 MBC 미술센터(대표 김명수)가 꼬박 3개월간 공들여 지었다.
2천765평의 부지에 기와집 26채와 초가집 25채가 들어서 있으며 각각 장승업(최민식)이 자란 김병문(안성기)의 집과 그림을 배운 유숙(기정수)의 집, 매향(유호정)이 머무는 기생촌, 상점과 주점 등으로 꾸며졌다.
세트 제작에 참여한 인원만 해도 5천여명을 헤아리는데 무형문화재기능보존협회회원들이 기본 골재를 짰다. 전라도 수몰 예정지에서 흙돌담을 통째로 옮겨오는가하면 조경에 필요한 소나무는 전라도 해남에서 구했고 돌은 충주와 보령에서 조달했다.
세트를 채우는 데 든 소품만도 2.5t 트럭 30여대 분량의 엄청난 규모. 무형문화재 보유자 이봉주 유기장이 손수 제작한 징과 놋그릇을 협찬하고 서예가 박원규 선생과 제자들이 현판과 주련 등의 글씨를 써주기도 했다.
오픈세트 제작에 든 비용은 11억원으로 한국영화사상 최대 규모이며 소품 구입비용까지 합치면 22억원에 이른다. 이는 총제작비의 3분의 1을 넘는 것이어서 임권택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이 오픈세트와 소품에 쏟는 애정이 얼마나 깊은가를 짐작할만하다.
건립금액 가운데 6억6천만원을 현물로 지원한 영화진흥위원회는 촬영이 끝난 뒤 ‘취화선’ 세트를 일반인에게 개방하는 한편 다른 영화와 TV 드라마의 세트로 활용할 계획이다.
태흥영화사 이태원 사장은 "빈 화선지 같았던 맨땅에 당시 종로 거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한 무대가 채워졌다"면서 "그 시절 당대의 실력있는 화가들이 합동화를 그렸던 것처럼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인 작품이 이뤄지도록 모두함께 큰 붓을 들어달라"고 당부했다.
임권택 감독과 정일성 촬영감독도 실감나면서도 꼼꼼하게 지어진 오픈세트 모습에 크게 만족했으며 출연진도 "세트가 아깝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연기하겠다"고 다짐했다.
현재 40% 가까운 촬영분량을 소화한 ‘취화선’은 내년 1월까지 촬영을 마치고 후반작업을 거쳐 4월께 관객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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