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영화계의 원로인 인민배우 박섭이 지난 17일오전 사망했다.
금년 나이 75세인 그는 지난해 8월 북측 이산가족 방문단원으로 서울에 와 동생병련(65)씨 등을 만나기도 했다.
10월 18일자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에 실린 북한 문화성과 조선영화인동맹 중앙위 공동부고는 박씨의 사망원인을 `급병’이라고 전하고 "동지는 다년간 영화예술분야에서 활동하면서 당의 주체적 문예정책을 높이 받들고 우리나라 영화예술 발전을 위해 적극 노력했다"고 추모했다.
박섭의 사망은 북한영화계에서 ‘원로시대’가 마침내 막을 내렸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90년대 후반까지 북한 영화계에서 영향력이 남아있는 원로들로는 박섭과 함께 유원준 ,문예봉, 김령조 ,오향문 등이 꼽혔었는데 이들이 지난 2~3년 사이에 모두 사망한 것이다.
유원준과 문예봉은 지난 99년에, 김령조와 오향문은 지난해 각각 사망했다.
박섭은 서울에서 극단 `신향’ 배우로 활동하다가 월북, 지난 51년 조선예술영화촬영소에서 영화배우와 성우로 활동했으며 조선번역영화촬영소장 등을 지냈다.
그가 출연한 대표작품으로는 `또 다시 전선으로’, `이름없는 영웅들’, `조선의별’ 등이 있다.
유원준은 북한 영화계에서 가장 존경받은 배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그는 사망 직전까지도 노구를 이끌고 장편영화 `민족과 운명’ 시리즈에 출연, "관록있는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다"는 평을 들었다.
북한 최초의 극영화인 `내 고향’에서 월북 여배우인 문예봉의 상대역인 남자주인공 역을 맡아 영화계에 입문한 유원준은 영화배우로는 유일하게 `노력영웅’ 칭호와 함께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오향문은 북한을 대표하는 여배우 오미란의 아버지로 지난 92년 `김일성상’을 수상했다.
김령조는 4.25예술영화촬영소 소속배우로 6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대표작으로 ‘1211고지 방위자들’ ‘혁명가’등을 남겼다.
문예봉은 48년 남편 임선규와 월북한 이듬해인 49년 북한 최초의 극영화인 ‘내고향’에 출연한것 을 시작으로 ‘춘향전’ ‘금강산처녀’등 1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67년경 ‘복고주의자’로 몰려 안주의 협동농장으로 추방됐다가 80년 다시 만들어진 ‘춘향전’의 월매역으로 은막에 복귀했다.
그뒤 ‘생명수’’ 은비녀’등에 출연했고 ‘인민배우’칭호를 받았다.
한편 이들의 사망으로 북한영화계는 50년대 평양연극영화대학을 졸업한 이른바’영화 2세대’들의 주도권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연령상으로는 60대인 이 부류의 중심인물로는 엄길선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총장(67세), 인민배우 최창수(64세) 등이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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