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친지 중에 회교 신자가 없고 이슬람 교리에 심취할 이유도 없어 코란(Koran)을 접할 기회가 여태 없었다. 자신의 목숨을 파리만도 못하게 여기는 이슬람 광신도들이 수 천명의 무고한 생명을 한 순간에 앗아간 세계무역센터 폭파사건 뒤로 도대체 코란의 가르침이 무엇이길래 인류를 향해 저토록 포악해질 수 있을까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코란의 메시지에 극도의 증오심을 신성시하는 구석은 없다. 사실 나는 코란 안에 증오의 대상이 어떤 모양으로 규정되어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
‘성전(聖戰)’은 속을 뒤집히게 하는 단어다. 상극된 두 개념을 합친 가식적 표현이며 웃는 낯으로 엽기적 살인을 일삼는 악당들이나 쓰는 말 같다. ‘지하드(Jihad)’를 흔히 성전(Holy War)과 동의어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 원 뜻은 투쟁(struggle)이라고 해야 옳다. 이 투쟁은 알라(Allah) 신을 위해서는 남을 죽여도 좋고 자기도 죽을 각오를 한 저항을 의미한다. 투쟁 대상인 적을 셋으로 구분한다. 첫째는 알라와 이슬람교 반대세력, 둘째는 악마(Satan), 셋째는 자신의 내부에 숨어 있는 악성이다.
테러범들의 수령으로 지목되는 오사마 빈 라덴은 대 미국 테러가 이슬람 교리에 분명히 나와 있어 그 정당성이 입증된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의 교리 해석으로는 서방사회, 특히 미국이 첫 번째 적의 범주에 끼는 모양이지만 종교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미국이 이슬람교를 박해했다는 기록을 나는 보지 못했다. 미국이 이스라엘과 가깝기 때문에 테러의 대상이라는 논리는 유치할 뿐이며 미국의 자유를 폐쇄사회일수록 싫어한다는 세태도 테러를 정당화시키기 어려운, 질시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지하드의 현대판 해석은 전투(qital)적 개념으로 국한된 느낌이지만 원래는 비 전투적인 육신, 재산, 글과 언어를 통한 대화, 그리고 피신까지를 포함한다고 돼있다. 실제로 코란에는 투쟁과 전투라는 두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특히‘박해자들을 끝까지 물리치라’는 지하드의 가르침은 종교 교리라기보다는 정치구호나 전시구호를 방불케 한다. 코란은 또 이슬람교를 믿는 자와 선을 행하는 자는 정당한 보상이 주어지며 특히 박해자와의 싸움에 스스로를 희생한 사람이 가장 높은 보상을 받는다고 가르친다. 이들에게는 알라가 즉시 영생을 보장하며 순교자 대열에 끼워 준다고 강조한다.
그렇다고 이슬람교가 투쟁만을 강조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근본 모럴은 평화를 사랑하는 것으로 타종교와 비슷하다는 점을 알아야한다. 실제로 중세기 이슬람교가 인류사에 이바지한 공적은 대단했다. 수학·과학·의학·철학 등 학문 분야에 미친 이슬람의 공헌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슬람교가 전 세계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던 중세기에는 지금처럼 배타적이고 투쟁적인 종교가 아니라 다른 종교를 인정하며 이들과 평화적으로 공존한 종교였다는 점이다.
세계는 지금 과거 어느 때보다도 이데올로기를 떠나 교육, 교역, 경제개발, 정치참여 확대에 전념하고 있다. 이런 열린 세계에서 배타와 아집만 주장하면 뒤 처질 수밖에 없다. 10억 이슬람교도들은 일부 광신도들의 잘못을 깨우쳐주고 훌륭했던 옛 전통을 회복하는 운동부터 벌이는 것이 옳지 않을까?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