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이 겨울을 바라보고 서 있다. 이 때쯤 나는 왠지 시간이 너무 빨리 가고 말았구나 하는 생각을 시작한다. 가을을 맞이하면서 올해는 참 좋은 시간, 의미 있는 일을 하며 보내야지… 그렇게 스스로에게 다짐했었다.
언제부터인가 바람 부는 날도, 찌푸린 날도, 싸늘한 날도 고맙기 시작했다.
맑은 날은 더더욱 그 날을 사랑하고 행복하게 느끼기에 게으르지 않고 싶다. 어쩌면 자신이 인생의 가을에 막 도착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껏 봄여름을 지내며 소홀히 지나쳐 온 듯 했던 일들이 이 가을에 단풍을 보면서, 나무의 열매를 보면서 그 날들도 소중했었고, 그 일들도 필요했었음을 절감한다.
뒤뜰의 과일나무들은 열매들을 머리에 이고 서 있다. 포도넝쿨은 이제 곧 제 할 일을 마치고 잎들을 내려놓는 것 같고 집 뜰을 빙 둘러 핀 국화는 서리를 맞고도 제 빛깔을 잃지 않고 있다. 자연의 힘과 섭리가 이렇게 아름답고 엄숙한 것이었음을, 진정으로 숙연해진다.
그러나 나는 아직 ‘가을’을 갖지(?) 못하겠다. 아직 내놓을 만한 열매나 마쳐둔 일들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다음 봄에 피어날 수선화 같은 꿈의 ‘알뿌리’ 하나쯤 이 가을에 나에게 심어볼까나.
누구나가 이쯤에서 믿어지지 않는 나이, 강물처럼 흘러간 세월을 느낄 것이다. 시간, 그리고 사람, 이것이 우리의 인생을 살아있게 하고 풍요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똑같이 주어지는 24시간에 무엇을 하는지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서 하루하루는 달라지고 한 인간의 삶을 엮어나가서 가정이 되고 사회를 이루고 세계의 역사가 된다.
언젠가 나는 죽이고 싶도록 미운 사람의 생각과 보복심 때문에 내가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것이 새로운 내가 싹트기 위한 아픔이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내 인생에서 내 생명과 시간을 소모한 일이었다. 늘 흑백논리에 우리는 익숙한 성격, 생활, 가치를 느낀다.
그렇지만 한번밖에는 쓸 수 없는 시간은 목숨처럼 소중하다. 부디 이제부터라도 내가 자신에게 편안한 친구가 되어주고, 내가 내 소리를 들으며 살아가는 시간으로 돌아와서 그 다음, 내 시간과 내 자신 밖의 일을 내다보고 싶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주고 싶은 선물은 ‘시간’이다. 쓸데없이 허송세월 하는 잡담이나 어울리기 보다 좋은 일, 좋은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의 시간은 정말 좋은 선물이다.
누가 말했듯이 소가 물을 마시면 우유를 만들고 뱀이 물을 마시면 독이 된다 했다. 지금 남을 헐뜯고 화나게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후에 그 독을 어찌 감당할까? 지금 우리가 우리의 따뜻함과 진정한 우정을 나누어 간다면 우리 삶의 변두리는 사랑으로 풍요하고 나눔으로 배부르게 될 것이다.
그냥 있어도 없어도 안 되는 시간이 아니라, 꼭 필요한 시간을 만드는 지혜가 필요하다.
오늘 자신이 투자하고 있는 시간을 주시하라. 무슨 일을 하는가, 어떤 말을 하는가, 즉 나는 어떤 인생을 갖고 싶어하며 그렇게 살 수 있는 가능성을 향해 열심히 살고 있는가. 주위 사람들과 내가 나누고 있는 것이 우유와 같은 시간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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