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누구나 어머니의 치마꼬리를 잡고 미장원에 가보았을 것이다. 코를 찌르는 파마 약 냄새와 머리카락 눋는 냄새, 날카롭게 잘려져 바닥으로 잠수하던 머리카락 뭉치, 동네 아줌마들의 수다 속에 파묻혀 어른의 세계를 잠시 엿본 듯, 성숙한 세계에 한 발 들어온 듯한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여자아이들은 머리 커트 해 준다고 남동생 머리에 땜통을 만들어놓고 연탄불에 지진 젓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태워먹으며 놀던 경험도 있을 것이다.
미용사들은 미용실 한 켠에 달린 방에서 식구들과 둘러앉아 밥을 먹다가 손님이 오면 수저를 놓고 나와 커트 가위를 잡았고 동물 뼈다귀 같은 플라스틱 파마 로트를 말았다.
새벽에 머리를 해야하는 급한 손님이 셔터를 두드리면 잠을 자다가 일어나 연탄불이나 숯불에 고데기를 꽂았고 손님이 있으면 문닫는 시간이 따로 없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생활비를 했고 자녀들을 교육시켰다.
지금 한국의 청담동, 압구정동, 명동, 이대 앞은 유럽식 인테리어, 최고의 재료, 최고의 기술진에 인터넷 까페까지 갖춘 미용실이 부지기수다.
하지만 이런 번듯한 미용실을 가진 사람 대부분이 집안의 가장으로서 어려운 시기를 건너왔다.
1982년 동경 국제이미용대회에 출장을 간 적이 있다. 이대 앞 은하 미용실을 비롯, 전국의 유명 미용인들 20여명이 경연대회에 참가한 후 야마노 미용학교에서 연수를 받는데 취재 차 동행한 것이다.
미용선진국인 일본의 국제대회 규모는 어마어마했는데 한국 미용인들은 한국팀이 출전하는 날 함께 간 모델들을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바꾸어놓았었다.
그들의 손재주가 얼마나 뛰어났던지 무대에 선 모델들이 과연 같이 비행기를 타고 간 평범한 얼굴들이었나 싶었다. 그때 나는 한국 미용인들의 기술이 대단함을 알았다.
그후 한국 최초의 미용전문지 [미용생활]을 창간하면서 고민한 것이 용어 선택이었다. 일제시대에 미용실이 도입되었기에 후카시, 시야게 라는 말이 그대로 쓰였고 그 동안 여성지나 신문의 여성 문화난에서 머리를 만지고 화장을 한 사람을 소개할 때 미용/000, 화장/000으로 표현했었다.
그러나 그때 편집국에서는 한국 미용인의 기술이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없고 그들이 가정 경제 및 사회에 이바지한 막대한 공을 생각하여 신조어(新造語)를 만들기로 했다.
그래서 나온 단어가 미용사 대신 ‘헤어 디자이너‘이고 화장 대신 ‘메이크업 아티스트’였다. 창간지부터 그 명칭은 보급되기 시작했고 ‘원장님’의 칼라 인터뷰난도 신설되어 미용인들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자리잡게 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뉴욕 미용계도 한국에서부터 미용을 해 온 여성들이 대부분이며 뛰어난 기술과 성실성으로 이민 생활의 터를 다지고 있다. 수많은 한인 여성들이 미용실, 피부관리실, 네일업소에서 일하며 이민생활을 주도하고 있다.
한인여성의 야무진 손길이 가면 가정 살림에 윤기가 돌고 자녀의 대학 학자금과 연수 비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남성보다 빨리 미국 문화에 동화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뉴욕 인터내셔널 뷰티 쇼나 타 지역 국제적 쇼에서도 출전하여 어김없이 수상권에 드는 등 한인 여성의 기술을 전세계가 알아주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이렇게 되기까지는 남들 놀 때 더 많은 시간을 일하고 남들 잘 때 더 노력하며 억척같이 살고있음을 알아야 한다. 보통 하루 10시간씩, 1주 6일씩은 일 하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손톱 손질을 하고 발을 닦았는지 집에 와서 저녁을 먹으려고 수저를 드는데 손이 후들후들 떨려 밥알이 후르르 떨어지더군요.”
남편의 공부 뒷바라지를 하던 한 한인여성의 말을 그냥 넘겨듣지 말자.
우리는 이렇듯 치열하게 이민의 한 시대를 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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