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연두 국정연설은 9.11 테러시대를 대처하는 미국의 향후 정책을 요약하고 있다. 즉 국제안보와 국내안보 및 경제안보라는 세 가지 안보 목적을 대 테러전쟁의 성공적 수행이라는 실질적인 목표를 통해서 이루겠다는 뜻을 전 세계에 제시한 것이다.
특히 북한, 이라크, 이란을 "대량 살상무기로 미국과 우방 동맹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국가"로 선언한 것은 남북한의 평화와 협력을 위한 향후 정국에 긍정적인 소식은 아니다. 그러나 서울에서 개최될 2월19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워싱턴의 대북 정책의 향후 기조를 공개적으로 확인했다는 점에서 워싱턴의 냉엄한 현실에 기초한 서울의 실사구시(實事求是)적 대북 정책을 기대해 본다.
매파가 대북 정책 주도
"향후 이라크에 대한 군사적 응징을 통해서 대 테러전을 확대해야 한다"는 월포위츠 국방차관이 현재 대북 강경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매파의 중심부에 있다. 럼스펠드 국방장관과 체니 부통령이 이 방향을 강력히 옹호하고 있다. 이번 부시의 국정연설은 그러한 정책을 명확히 밝힌 것이다.
따라서 한승수 외교통상부 장관과 신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등은 바로 이 매파의 중심 인물들과 대북 문제에 관한 외교적인 협상을 집중적으로 서둘러야 한다. 현재 힘의 균형을 잃은 워싱턴 비둘기파의 정책 입안자들과의 만남은 외교적인 우선 순위를 그르치는 일이다. 워싱턴이 재포용 정책으로 나가도록 서울의 외교진은 워싱턴의 매파들과 정공법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국정연설은 수사
부시 대통령이 북한, 이라크, 이란은 테러국가들과 함께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악의 축"이라고 선언한 것은 수사적인 표현이다. 레이건 대통령은 구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칭했다. 2차 대전 때 전쟁 당사자인 독일, 이탈리아, 일본 3개국은 ‘악의 축’이라고 불려졌다. 부시는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루즈벨트 대통령 당시의 수사적인 표현을 21세기 대 테러 전쟁에서 다시 사용함으로써 미국민들의 역사의식을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 있다.
부시가 북한을 ‘악의 축’의 일부로 규정한 것은 북한의 모든 시민들을 2단계 테러 전쟁의 대상으로 규정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수사적인 표현에 대응하게 될 평양의 반응이다. 그렇지 않아도 상징과 수사적인 표현 및 문화적인 대응에 민감한 평양의 외교적인 자긍심은 부시가 이끄는 워싱턴과 절연 관계에 들어갈 수도 있다.
중간에 낀 한국.
서울의 대미 외교정책팀은 문화와 수사적인 관계에 민감한 ‘대북 외교 기초’를 워싱턴의 신 대북 정책팀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하여야 한다. 형식을 내용 이상으로 중시하는 남북한, 중국 등 동양문화에 대한 몰이해는 워싱턴의 대북 외교에서 돌발 군사위기를 몰고 올 확률을 더욱 증가시킬 뿐이다.
이제 서울은 인정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북한의 긍정적인 외교적 노력을 워싱턴에 전하는 데에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 이미 평양은 장거리 미사일의 수출을 중단하는 대가로 워싱턴이 경제-식량 대북 원조를 제공할 것을 제시한 바 있다. ‘강성대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평양의 노력은 곧 경제부흥을 일컫는 말이다. 결국 서울의 대미 정책과 대북 정책은 ‘우방 워싱턴’과 ‘화해와 협력의 대상 평양’ 사이에 끼여 있다. 중간에 끼여 있는 상황이 오히려 숨겨진 축복일 수 있다. 양쪽의 속내를 알만큼 알기 때문이다.
전영일<국제전략화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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