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여자로부터 어머니로 얼굴을 바꾸었을 때는 별로 억울할 것도 서러울 것도 없는 듯 했다. 별로 신통치 못한 나의 세상살이에 대한 아내의 짜증 앞에서 나는 가끔씩 작아지기도 했지만 아이가 하나씩 생길 때마다 아이의 진자리 마른자리를 치다꺼리하면서도 뭔지 모르게 기뻐하는 표정을 보며 나는 미안한 마음과 어려움을 비켜 나갔다. 처음 시작하는 가난한 살림에 보탤 것이라고는 아이의 울음소리뿐이었는데도 오히려 불평을 삭이고 즐겁게 잘 견디는 아내의 감춰진 힘을 보았다. 그러던 아내가 몇 년 전부터는 어머니로서의 믿음직스럽던 옷을 벗고 회색이나 흰색이 연상되는 할머니란 가냘픈 이름으로 이름을 바꾸어 달았다.
아내에게도 몇 자 안 되는 짧은 인생에 대하여 꽃밭 같은 꿈도 있었고 야무진 설계도 있었으나 할머니란 이름으로 명찰을 바꾸어 달고부터는 꿈길이 아니라 딸이 사는 쪽으로 길을 틀어 자청이나 타청으로 자주 나선다. 손녀를 돌보아 주는 일이 하나 더 생긴 까닭이었다.
자식을 키울 때의 그 마음 속에는 어디에나 비할 바 없는 귀여움에다 뭔지 모를 기대가 가마니로 몇 섬은 섞여 있었는데 손녀를 보는 그 얼굴에는 그저 손녀가 흘리는 귀여움만 주워담으며 좋아할 뿐이었다.
품속에 있을 때 자식이라 했는가? 멀리 서부로 가서 사는 아들은 일년에 한두번 보면 그것이 전부라 가끔씩 내뱉는 아내의 한숨은 허리만 굵어졌다. 처녀의 이름을 아내로 바꾸고 어머니로 또 바꾸더니 이제는 할머니란 이름으로 이름을 또 바꾸었다.
봄날의 분홍색 화단 같던 그 속마음이 희망과 꿈으로 푸르게 펄럭이는가 싶었더니 어느새 흰색이 다 되어 가는 회색의 나이가 된 것이다. 아내의 친구들도 다 같을 것이다.
예전에는 몰랐다. 아내에게도 나들이 할 곳이 있고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젊은 나이에는 각자가 모두 매달려 있어야 할 일과 일구어 놓아야 할 목적이 있어 별로 모여서 시간을 축내는 일이 별로 없었고 서로의 연락마저도 신통치가 않아 어머니가 된 아내에게는 친구가 없는 줄 알았다. 있어 보았자 남자들에 비해서 그저 그렇고 그런 정도라고만 가볍게 생각했다.
결혼한 아내의 20대에는 한 두어 분, 30대에는 서너 분, 40대에는 네댓 분과 잊을 만하면 실같이 가느다란 소식을 주고받더니 회색의 나이 50대가 되면서부터는 다섯 더하기 다섯이 훨씬 넘는 친구들이 별 일도 없는데 별일이 있는 것처럼 모여 옛날을 돌아보는 이야기에다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 며느리나 사위의 미운 이야기까지 상위에 차려놓고 진수를 즐긴다.
그러다가 그것도 모자라 무용팀을 만들어 익숙해진 공연 솜씨로 동창회 때마다 회의장을 화려하게 꾸며준다.
’상해도 도미’라고 나이는 비록 회색의 색깔로 환갑을 넘겼지만 그들의 모임이 명문여고 출신답다고 생각이 든 것은 싸리문이 튼튼해야 마당이 따스한 것처럼 아내의 친구들은 나이가 들었어도 말이나 행동은 꼿꼿하지만 따스하기 때문이었다.
똑똑한 것이 영악하면 따지는 일에 선두를 잡지만 똑똑한 것이 순하면 지혜로 가고, 그 지혜는 집안과 이웃을 밝게 한다. 고기를 요리해서 주지 않고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치는 유대인처럼 세상살이의 해석과 진행을 바르게 알고 가르쳐 온 아내와 그 친구들의 회색의 나이가 아직은 백합의 꽃색이라고 속으로 우기면서 나는 아내와 그의 친구들을 바라볼 때가 많다.
김윤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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