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에 다니는 큰 아들이 6년전 대학교에서 만난 약혼녀와 5월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모든 준비를 며느리될 아가씨가 하고 있었는데 지난해 11월부터 문제가 생겼다. 다름아닌 결혼리셉션 때문이었다.
우리는 사촌등 모든 가족이 주말에도 장사를 하는 직업을 갖고 있고, 친구는 물론이고 친분관계가 있는 분의 거의가 비슷한 직업을 갖고 있다.
결혼당일 우리 가족이야 문을 닫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축하객들이 우리 집 결혼식 때문에 가게 문을 닫을 수는 없으니 참석 가능한 늦은 시간에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늦은 시각에 결혼식이 끝나게 되므로 식사는 결혼식 장소에서 바로 대접하는 것이 더 낫다는게 우리 부부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며느리될 아가씨의 생각은 달랐다. 결혼식은 교회에서 리셉션은 호텔에서 하고 싶다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든 호텔이든 한곳으로 정해서 하자고 이야기를 해 일단락 된듯 싶었는데 결혼이 가까운 지금도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중간에 있는 내 아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아들은 타주에 있으므로 전화로만 이야기를 나누고 어떤 해결책도 찾지를 못하고 있다. ‘그날만큼은 약혼녀를 기쁘게 해주고 싶다’면서 아들은 속이 상해했다.
나는 6년이나 같이 지내오며 우리 가정사등 모든 형편을 잘 알고 있는 며느리가 야속하기 까지 했다. 남을 배려하지 못하는 그런 여성이라면 내 아들에게는 모르겠지만 나의 며느리로서는 반갑지가 않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생각다 못한 우리는 심리상담 카운슬러를 찾아가 상담을 받았다. 카운슬러는 이렇게 말했다.
“두분에게는 리셉션이 별게 아니더라도 며느리에겐 평생 한번있는 아주 큰 일입니다. 며느리와 손님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하십니까? 누가 행복해야 합니까?”
그리고 아들을 결혼시키는것이 아니라 아들이 결혼한다라고 생각을 바꾸고, 이제부터는 아들이 도움을 청할때만 도움을 주는 아들의 그림자로만 살라는 것이었다. 아들을 앞으로 내 아들이 아닌 며느리의 남편으로 본다면 서로가 편하다는 말도 했다.
우리는 너무나 마음이 가벼웠다. 갈등의 한쪽을 버리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6월에 의과대학을 졸업하는 아들에게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한국인의 결혼관을 몇장의 긴편지로 썼다. 조금이라도 우리 입장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으면 싶어서였다.
그러면서 끝에는 네 약혼자가 좋아하는 결혼식을 생각해 보라고 썼다.
우리는 자식과의 이별연습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누가 말했듯이 자식사랑은 짝사랑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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