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전 초등학교에 다니는 막내 딸아이가 학교에 다녀와서, 구멍난 양말을 신고 갔다가 친구들 앞에서 많이 창피했었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듣고 양말을 잘 챙겨 신겨보내지 못해서 수치심을 느끼게 한 부모로서의 책임감을 느꼈다.
그러나 동시에 어떤 것이 정말 창피한 것인지를 정확히 가르쳐 주어야한다는 생각이 번뜩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서 “구멍난 양말이나 바지 혹은 남루한 의복이 남들 앞에서 창피한 것은 사실이지만, 더욱 창피한 것이 무엇인지 아니?”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정말 창피한 것은 친구를 사랑하지 못하고, 거짓말하고, 남을 속이는 일이란다”라고 말해 주었다.
그 말을 다 이해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때부터 “정말 창피한 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으면 아주 명확하게 대답을 한다. 그때마다 부모로서 마땅히 가르쳐야 할 것을 가르쳤다는 자그마한 자부심으로 뿌듯함을 느끼곤 한다.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가 벗은 몸이 부끄럽고 창피해서 무화과 나뭇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은 이래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인간은 수치심을 느끼며 살아간다. 첫 인류의 수치심이 외면적 육체와 관계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느끼는 수치심의 대부분은 내면적인 것이 아니라 외면적인 것이다.
타인종을 들먹일 필요없이 한국사람들을 보면 그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한국사람들은 얼굴, 체형, 머리 스타일 등의 외모와, 의복과 집, 자동차 등의 외형적 소유를 타인과 비교함으로 수치심을 많이 느낀다.
전염병처럼 한국사회를 휩쓸고 있는 성형수술의 폐해가 미국은 물론 해외 언론의 도마 위에 올랐던 사실과 수백, 수천 만원 짜리 브랜드 제품들, 호화스러운 외제차들이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가는 사실, 로스엔젤레스 한인타운 내의 고급 미용실과 피부관리 업소, 그리고 브랜드 제품 판매 업소의 호황이 한국 사람들이 느끼는 수치심의 현주소를 그대로 반영해주고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정말 수치스럽고 창피한 것이 무엇인가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과연 외면적 수치심이 인간이 느껴야 할 수치심의 전부인가?”라고 우리는 묻지 않는다.
시각 장애인으로 한국 최초의 맹인 박사가 된 강영우 박사는 그가 쓴 “우리가 오르지 못할 산은 없다”는 책에서 한번도 자신의 외모나 처지를 부끄럽다거나 창피하게 느꼈었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시각을 잃은 나와 같은 맹인도 분명한 비전을 가질 수 있다”고 힘주어 강조한다. 그리고 분명한 목표와 비전이 자신의 오늘을 이루었다고 고백한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에게 있어서 정말 부끄럽고 창피한 것은 무엇인가? 분명히 그것은 외모가 남들보다 못하다는 사실이 아니다. 외형적 소유가 남들보다 적다는 사실도 아니다. 정말 인간이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자신의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모르는 것이며, 분명한 목표와 꿈이 없다는 사실이다.
목적이 없다면 그것을 우리는 수치스러워 해야한다. 명확한 인생관과 가치관이 없다면, 왜,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 지를 모른다면 그것을 우리는 창피해하고 부끄러워해야 한다.
정작 부끄러워해야 할 것을 부끄러워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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