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과 정의를 숭상하는 미국에서도 선거 철이 되면 국민들은 즐겁지 않다. 대기업들이 거대한 액수의 기부금을 정당에 주고 그 정당 후보가 당선되면 그 기업체 로비가 쉽게 먹히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정치 기부금은 합법적인 뇌물이 되는 셈이다.
이러한 불합리를 시정하기 위한 노력은 오래 전부터 있었으나 이번에 존 맥케인 연방 상원(공, 애리조나)이 주도한 ‘양당 선거 운동 개혁법’(Bipartisan Campaign Reform Act)이 의회를 통과하고 지난 3월 27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서명함으로써 결실을 맺게 됐다.
그러나 이 법률의 운명은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이미 미치 맥코넬 연방 상원의원(공, 켄터키)이 이 법은 수정 헌법 제1조의 언론 자유 규정을 위반한다는 이유로 소송을 했으며 미국 총기 협회(NRA)도 이 법은 언론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 맥케인 측에서는 선거 운동(electioneering)과 언론 자유는 다르다는 것은 이미 대법원에서도 인정하고 있다고 맞서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미국 문화다. 미국 문화에서 부는 선한 것이며 언론은 제한을 받을 수 없는 것으로 되어 있다. 자본주의는 막스 웨버가 그의 ‘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에서 분석한 것처럼 개신교, 그 중에서도 특히 칼빈주의 윤리 실천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미국 자본주의는 칼빈주의를 신봉하는 청교도들의 성실한 노동의 결과인 것이다.
이 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자기 돈을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과 그의 후보자들에게 얼마를 주든지 아무도 간섭할 권리가 없다고 강조한다. 정치 헌금은 정치적 의사 표시를 위한 수단으로 본다면 이를 제한하는 것은 언론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란 주장이다. 언론의 자유는 어떠한 경우든지 제한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법은 위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현실에 비춰 볼 때 소수의 대 자본가들이 그들의 부를 이용해서 정치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것을 부인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것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미국의 전통에 위배된다. 부자가 언론의 자유를 내세워 금품 공세를 펴는 것은 모든 국민의 한 표의 투표권을 갖도록 한 정신에 어긋난다.
이 법은 개인의 헌금 한도액을 현 1,000달러에서 2,000달러로 늘리는 대신 이익 집단의 대규모 헌금을 금지하고 있다. 대기업으로부터 많은 헌금을 받는 대부분의 공화당 의원들이 이 법을 싫어하는 것은 이해가 간다.
부시 자신도 ‘이 법에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지금보다는 정치 풍토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서명한다’며 아무런 공식 행사를 갖지 않고 조용히 사인했다. 마음에는 별로 내키지 않지만 엔론 사태가 터지면서 기업의 정치 헌금이 문제가 되자 부시도 거부권 행사를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법의 합헌 여부는 연방 대법원에서 결국 가려지게 될 것이다. 대법원은 미국 정치가 금권 정치가 되지 않도록 너무 헌법의 문자에만 매 달리지 말고 헌법의 근본 정신의 입장에서 현명한 판결을 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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