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들어 나이 먹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비록 얼굴에 주름이 늘고 탄력은 잃었지만 마음만은 여유롭다. 길거리에 버려진 듯 피어있는 작은 꽃 한 송이, 미풍으로 흔들리는 나무 가지 위에 솟아있는 파릇 파릇한 생명의 잎새들까지도 눈에 들어오고 시간 나는 대로 좋은 책들을 읽으며 살아 숨쉬고 심장이 뛰고 있음이 이렇게 감사할 수가 없다.
미국 이민생활 30년을 넘게 늘 쫓기며 무엇이 옆에 있는지도 의식할 수 없이 달려오다가 이제 네 딸들을 다 시집보내놓고 나니 이 땅에 보내진 나의 의무를 어느 정도는 감당한 것 같은 홀가분함이 있다. 딸들은 나의 둥지를 떠나 자기들의 둥지를 만들기 위해 넓은 세상으로 날아가 버렸다. 나는 그저 그들이 각자가 맡은 사명을 잘 깨달아 보내신 이의 마음에 합당한 삶을 살기 바랄 뿐이다.
아이들을 다 떠나 보내고 우리 부부가 기거할 수 있는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고 거치장스러운 모든 것을 다 정리했다. 빈손으로 온 내가 이 땅에 살면서 어찌나 많은 것을 그 동안 소유했던지 방마다 애들이 쓰다버린 옷가지, 구두, 화장품, 책들이며 인형들까지 서랍과 장 속에 가득가득하다. 이런 것들을 사들이느라 허리가 휘어지도록 일했고 이런 것들이 내 발목을 붙들어 자유로울 수 없었음을 돌이켜 보게 된다.
내가 나 되기 위해 태어난 것도 아니고 내가 계획해서 만든 아이도 아니며 자식의 머리털하나도 더 있게 하지 못하면서 나는 자식도 내 것인양 욕심을 부리며 살아왔다. 언젠가는 내 몸도 내 재산도 내 자식도 다 반환하고 빈손으로 태어날 때와 같이 이 세상 사는 동안 빌려쓴 모든 것을 돌려주고 떠나야 한다. 나는 내 자신을 아낌없이 활용하여 이웃과의 사랑과 창조질서를 유지하는데 동참하라고 보내진 심부름꾼에 불과한데 이 사실을 제대로 깨닫지 못해 내 몸에 비위를 맞추며 자신의 이익과 평안과 안전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것 같다.
그로 인해 오히려 채워지지 않는 갈증으로 목말라 하면서 그 갈증을 채우기에 급급하여 옆을 돌아볼 여유도 없었나보다. 모든 것을 다 가졌음에도 아무 것도 갖지 못한 사람처럼 공허해 하면서...
그 동안 인생의 참 가치를 깨닫지 못해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가 없었고 진정한 자유함이 무엇인지 헤아려 볼 겨를도 없었다. 이제 우주 안에 하나의 점보다 더 작은 나의 존재이지만 우주보다 더 귀한 생명을 가졌기에 그 생명이 다 할 때까지 헌신을 통해 주변의 어두움을 밝히며 살고 싶다.
물질의 풍요는 일시적인 만족밖에 주지 못하지만 마음의 풍요는 세상을 다 가진 것보다 더 부유함을 이제 처음 안 것도 아닌데, 백발이 성성한 지금에 이르러서야 내 가슴깊이 진솔하게 와 닿아 삶의 여유를 갖게 됨에 감사하며 늙는 것도 진정 아름답게 여겨진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