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첫 번째 글에서 미국을 얘기하기 위해 로마가 야만족과 풍요 속의 내적 부패로 망했다고 지적했던 것을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하버드 대학의 조지프 나이 교수가 한국일보 3월 26일자 기고 "신로마제국 미국이 새 야만인을 만났다"에서 "로마제국은 다른 제국에 굴복하지 않았고 내부의 부패와 잡다한 야만인의 침입으로 멸망했다"라고 꼭 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양반이 혹시 제 글을 표절…농담입니다.
국제정치학의 석학인 나이 교수와는 작은 인연이 있습니다. 1990년에 미(美) 국무성이 저를 초청했을 때 그의 연구실에 간 적이 있습니다. 2년 뒤 하버드 대학의 교환교수로 초청해 준 사람도 나이 교수였는데, 그 때도 저는 개인적인 이유로 스탠퍼드 대학으로 왔습니다. 제가 드리려는 말씀은 누가 무슨 얘기를 했느냐가 아니라,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통찰력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되는데 하는 생각입니다. 오늘도 미국 얘기입니다.
미국은 강하고 부유하고 똑똑한 나라입니다. 미국이 ‘9·11테러’ 이후를 처리해 나가는 과정을 보면 이 점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은 섣불리 그리고 독자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국내외의 호응과 협력을 기다리고 만들었습니다. 추구하려는 이익을 잘 정의하고, 이 이익의 달성을 의미할 실현 가능한 목표들을 구체적으로 설정했습니다. 그리고 목표달성에 필요한 효과적인 수단들을 지혜롭게 선정하고, 일이 시작된 이후에도 효율적인 환류(還流 feedback)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의 미국에게서 진정한 ‘강자의 여유’를 찾기가 어렵다는데 있습니다. 이 때의 여유란 사고와 행동에 어느 정도는 원칙이나 도덕성, 명분이 있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국제정치학 교과서는 국가들간의 관계가 홉즈가 말한 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특징으로 하는 ‘자연상태’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아프리카 초원의 맹수들처럼, 모든 국가들이 자기이익을 최우선으로 추구하고 이를 위해 무력사용을 정당시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개인이든 국가든 정말로 힘이 있을 때는 여유가 있습니다. 그것이 없다는 것은 진정한 최강이 아님을 의미합니다. 영국이나 프랑스 등 전통 우방과의 관계, 최대 잠재 경쟁자인 중국과의 관계, 중동지역 국가들, 한반도 등 세계 여러 나라들의 다양하고 복잡한 힘의 관계 속에서 고수(高手)처럼 바둑두는 미국은 역시 대단한 나라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미국은 호혜적 이익보다는 일방적 이익을 그리고 설득보다는 강제력을 우선하면서 좌충우돌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노근리 문제에서 보는 것처럼, 인권 등 인류의 보편가치를 말하려는 도덕성은 상징적 치장감으로 찾으려고 해도 드뭅니다. 국가들은 미국에 고개를 숙여도 그 국민들의 미국을 향한 적개심은 날로 커지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성이 한층 높아진 대외 경제부문을 보면 미국이 왜 욕을 먹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자국 내에서는 흡연의 위험성을 무섭게 강조하면서도 다른 나라에게는 담배를 더 많이 수입하라고 강요하는 소소한 일에서부터, 곧 단종에 들어간 전투기를 다른 나라에게 구입하도록 강요하는 일(그런다고…당연히 이유야 많겠지만…꼼짝 못하고 따라가는 쪽도 한심합니다만), 약소국이 자국 산업보호를 내세우면 ‘수퍼 301조’ 같은 것으로 위협해서 철회시키면서도 자국철강의 보호를 위한 불공정조처는 얼굴 색도 변하지 않고 강행하는 것이 지금의 미국입니다. 최소한의 명분도 없이 그저 힘으로만 밀어 부치는 것입니다.
이런저런 과정은 미국에게 많은 적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기회가 오면 어떻게든 힘을 합쳐 미국을 주저앉히려고 할 것입니다. 국가도 개인처럼 힘을 가졌다고 막 나가면 적이 많아집니다. 잘 난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걸 자꾸 드러내는 데야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런데 참 희한한 것은 그 교훈을 알면서도 대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미국은 ‘금(金)숟가락’을 입에 문 사람들에 의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저는 높은 자리에 앉은 그 분들을 먼발치서도 본 적이 없습니다만, 소수의 머리보다는 피(被)지배자의 마음이 좀더 고려되어야 할 것입니다. "민심이 천심"이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나라안이건 나라간이건 별 볼일 없어 보이는 대중들과 나라들을 너무 무시하면 역사는 다른 곳으로 방향을 틉니다.
미국처럼 다원적인 사회에서 스포츠와 정치는 별개입니다. 그러나, 동계올림픽의 석연치 않은 결정들에 대해 미 국민들이 보인 애국적 반응은 당연하면서도 안타깝습니다. "그...보니까 우리가 잘못했네...바로 고쳐야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강자의 여유’가 아쉬운 대목입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