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마켓 지붕의 일부가 무너져 내려 소란이 일어난 일이 있었는데 그때에 있었던 일이다.
사고가 난 것은 아침 8시께. 새벽부터 골프에 열중하고 있던 중 연락을 받고 마켓에 돌아와 보니 방화용 스프링클러가 터져 가게 내부는 물론 주차장까지 물바다가 되어 있었다. 무너진 지붕은 상품 진열대로 떨어져 그야말로 아수라장을 이루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TV, 라디오, 신문사 기자들이 취재차량, 헬리콥터까지 동원하여 취재를 하느라고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 자리에는 으레 공인 보험조정자(Public Insurance Adjuster)도 끼여 있는 법인데, 이는 보험가입자의 입장에서 보험회사로부터 가능한 한 많은 혜택을 얻어내게 해주고 몇 퍼센트의 보상을 챙기는 직업인이다.
그들 중 몸집이 크고 중후한 50대 신사가 내 옆에 조용히 오더니 굵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말했다.
“저는 A공인보험조정 회사의 부사장이며 이 방면에만 30년간 종사해온 베테런입니다. 일을 제게 맡겨 주시면 최대의 이익을 도모해 드릴 수 있습니다. G회사는 큰 회사이기는 하나 일은 저기 저 젊은이들이 하는데 별로 경험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제게 일을 꼭 맡겨 주십시오”
나는 그의 열변을 그리 관심 있게 듣지 않았다. 왜냐 하면 G회사는 몇년 전 화재가 있었을 때 잘 해결해 준 일도 있고 해서 마음속으로는 이미 그 회사로 정해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참 후 G회사가 내민 계약서에 내가 사인하는 것을 먼발치에서 지켜보고 있던 그 A회사의 신사는 또 다시 조용히 나에게 다가왔다.
불쾌한 말이 나올 것이란 짐작에 약간 긴장한 나에게 그는 담담한 어조로 "잘 결정하셨습니다. G회사는 크고 좋은 회사이니까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뜻밖에 말에 대꾸할 적당한 어구가 생각나지 않아 우물쭈물 하고 있는 나에게 인사를 한 후 총총히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고 난 한참 후에야 "아, 이것이 바로 미국의 민주주의를 이루고 있는 바탕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상에서 가장 모범적인 민주사회를 이루고 있다는 미국에서 이미 30년이 넘게 살아왔고 또 스스로 민주주의를 신봉하고 민주적 사고를 가졌다고 자신해 온 나이지만 과연 그와 같은 처지에서 내가 그와 같이 말하고 행동할 수 있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입으로는 민주주의를 말하며 민주적 의식을 가졌다고 자신하지만 자기도 모르는 깊은 의식의 밑바닥에는 비민주적 요소가 두껍게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나와 우리가 이루고 있는 사회에서는 아무리 민주주의로 분칠하여도 그 결과는 비민주적이 될 수밖에 없다.
쿠데타를 일으킨 장본인이 그 사회의 지도자로 군림할 수 있는 것도, 자칭 타칭 민주투사라는 사람이 그런 인사와 제휴하여 국가 지도자로 추앙 받을 수 있는 것도, 군사정권의 지도자를 아버지로 두었다는 한가지 이유만으로 정계에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것도, 당선자를 끝까지 받들겠다고 각서까지 쓴 사람이 낙천되니까 당을 뛰쳐나와 당선자에게 비수를 들어대도 많은 표를 얻을 수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의 의식 깊은 곳에 비민주적 요소가 크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를 구성하는 한사람 한사람이 모두 앞서 말한 A회사 사람처럼 될 때 그때가 바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정착되는 때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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