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에세이
▶ 박흥률 경제부장 대우 peterpak@koreatimes.com
92년에 제작된 한국영화 중에 ‘웨스턴 애비뉴’가 있다. 장길수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강수연, 정보석, 자니 윤 등이 주인공으로 출연한 이 영화는 미국으로 이민 와서 사는 한인들의 아픔과 애환을 그렸다. 이 영화에서 강수연은 방황하고 좌절하는 1.5세 연극배우로 나오고 정보석이 반항심 많은 택시운전사로 출연해 폭동 당시 마켓을 운영하는 아버지 자니 윤을 돕다가 폭도들의 총격을 받고 현장에서 사망하는 내용이 그려진다. 이 영화의 제목을 왜 ‘웨스턴 애비뉴’로 정했는지 제작진에게 물어본 것은 아니지만 한인들의 좌절된 아메리칸 드림을 웨스턴 애비뉴로 상징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현실 속의 웨스턴 애비뉴는 한인들의 삶의 보금자리로 나날이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길게는 샌타모니카에서 피코까지 3마일 구간에 만물상서 고급 샤핑몰까지 없는 것이 없는 소매의 중심지이다. 이 가운데 특히 올림픽-베벌리 구간의 업소는 90%가 한인이 운영하고 있고 상가 주인도 60~70%는 한인으로 추정될 정도로 웨스턴 애비뉴는 누가 뭐라고 해도 한인의 거리다. 물론 웨스턴 애비뉴가 성장하는 데 시련과 고통도 따랐다.
폭동 당시 6가와 웨스턴 코너의 한인상가는 폭도들에 의해 전소됐고 9가와 웨스턴의 한인상가들이 약탈당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당시 6가와 웨스턴 코너의 한인상가를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 정치인들이 방문해 폭동피해 한인상인들의 아픔을 위로하기도 했다. 웨스턴 애비뉴에 있던 한인 대형마켓들은 아무리 불러도 경찰이 출동하지 않자 총기를 들고 자위권을 행사해야 했다.
당시 미 주류방송은 9가와 웨스턴의 한인상가에서 총을 들고 가게를 지키던 한인 보석상 주인의 모습을 방영해 한인들을 오히려 폭도로 오인하게 만들기조차 했다. 웨스턴 애비뉴의 멜로즈 길을 중심으로 밀집해있던 가구점들도 이 당시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고급가구들을 폭도들이 훔쳐가고 가게를 약탈당하면서 가구점 거리가 한때 쇠락의 길을 걸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가구점들이 연이어 파산을 신청하고 웨스턴 애비뉴를 떠났다.
그러나 지금 웨스턴 애비뉴에 폭동의 흔적과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다. 활기에 찬 상인들과 행인들의 모습이 있을 뿐이다.
웨스턴 애비뉴는 다른 거리에 비해 유독 한인 대형마켓들이 많다. 이들 대형 마켓이 웨스턴 애비뉴를 타운 소매업의 중심지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 마켓을 중심으로 식당, 떡집, 카페, 나이트클럽 등 각종 요식업소가 자리잡았고 코리아타운 플라자, 로데오 갤러리아 등 대형상가도 자리잡게 됐다. 또한 자그마한 규모의 띠상가들이 웨스턴 길을 따라 연이어 있다.
그러나 길이 좁고 조잡한 간판들이 길을 가득 메우고 있으며 어딘지 모르게 정리되지 않고 산만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오죽하면 LA시 커뮤니티 재개발국(CRA)에서 일부 한인업소에 대해 미화작업을 해주고 영문간판을 달아준다고 할까. 거리가 깨끗해져서 좋지만 우리 스스로 돈을 들여서 그렇게 하지 못하는 현실이 아쉽다. 띠상가들은 주차 문제도 정말 심각하다. 고객들이 알아서 찾아오고 싶으면 찾아오라는 식으로 주차문제 해결을 포기하다시피 했다. 물론 단골고객들은 아무리 주차공간이 힘들어도 알아서 찾아간다. 그러나 대부분의 고객들은 주차가 힘든데 상가를 찾아갈 리가 만무하다.
6가와 웨스턴 코너의 북동쪽 코너에 MTA가 윌셔 엔터테인먼트센터 건립을 추진하고 우래옥 자리에도 ‘마당’이라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상가공간 건립이 예정되어 있다. 이러한 입지조건을 잘만 활용하면 웨스턴 애비뉴가 주류사회 속의 거리로 더 성장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 행콕팍의 라치몬트 빌리지처럼 일정 구간을 아늑하고 정겨운 식당가 거리로 꾸미는 것도 생각해볼 일이다. 그동안 외형 성장에만 치중했던 웨스턴 애비뉴를 이제는 아름답게 가꿀 때가 되었다. 웨스턴 애비뉴는 한인들의 땀과 눈물, 피가 배어 있는 우리 삶의 터전이기도 하지만 미국인 고객들을 타운으로 유치할 수 있는 훌륭한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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