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식 상팔자’라는 말이 있다. 자녀 때문에 겪는 어려움과 고통이 많아서 자식이 없으면 속을 썩힐 일이 없기 때문에 팔자가 편하다는 뜻의 그 말은 이 세상 대부분의 부모들이 공감하며 가끔씩 뱉어내는 넋두리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말은 넋두리일 뿐이지 실제로 무자식이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자신을 닮은 존재요, 자신의 분신이요, 또 다른 나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식을 갖기 원한다.
그렇게 원해서 얻은 자식임에도 불구하고 자식 때문에 고통이 밀려오면 ‘무자식 상팔자’라고 말하는 것은 자기 모순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자식으로 인한 어떠한 고통과 시련도 감수하겠다는 무언의 서약이다.
자식을 갖는 것은 부모로서의 특권이지만, 그 특권에는 반드시 부모로서의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것인데, 바로 자식으로 인한 고통과 눈물과 가슴앓이가 그것이다. 그러므로 ‘무자식 상팔자’라는 넋두리는 부모가 될 때 한 무언의 서약을 스스로 파기하는 모순적 행위이며, 특권은 누리면서 책임과 의무는 회피하려는 비도덕적 행위인 것이다.
또한 ‘무자식 상팔자’라는 말은 특별한 가치와 목적을 두고 모든 인간을 이 세상에 보내신 조물주의 계획을 부정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에게는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있고 이루어야 할 목적이 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존귀한 존재인 것 이다.
한 인간의 가치와 목적은 그가 독립된 인격체로 성장하는 준비과정을 거치고 난 후에 성인으로 살아가면서 드러나게 된다. 그러므로 그 나이가 되려면 아직 먼 자식들을 놓고 ‘무자식 상팔자’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판단이요 지극히 편협하고 부정적인 자녀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가서 자식을 원하지만 자식을 낳지 못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 시대가 많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것은 이혼과 소박의 가장 큰 사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들에게 무자함은 숨쉬는 순간 순간의 고통이며, 평생을 안고 가야 하는 인생의 쓰리고 무거운 짐인 것이다. 그러므로 자식이 없는 사람들의 사전에는 ‘무자식 상팔자’라는 말은 없다. 누가 무엇이라고 해고 그들에게는 ‘유자식 상팔자’(有子息 上八字)인 것이다.
자식의 식(息)자를 생각해 보면, 자식은 한숨과 탄식의 원인이 될 수도 있고 기쁨과 위로와 안식의 근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식, 탄식, 안식이라는 말은 모두 똑같은 한자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식이 한숨과 탄식을 가져오면 ‘무자식 상팔자’이지만, 자식이 위로와 안식을 주면 ‘유자식 상팔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홍수 심판 전에 한 아버지가 아들을 낳아 “이 아들이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안위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이름을 ‘안위’ 혹은 ‘안식’이라는 의미의 노아라고 지었다.
노아의 아버지는 아들을 통해 힘든 세상살이에서의 모든 고통을 잊고 안식할 수 있었기에 ‘유자식 상팔자’였던 것이다.
이민 가정의 모든 부모들이 ‘무자식 상팔자’라는 넋두리는 던져버리고, 고달픈 삶 가운데에서도 자식들로부터 위로와 안식을 누리며 ‘유자식 상팔자’를 외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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