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도 자기 자식은 예뻐 보인다고 한다. 하물며 사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아내가 아이들 자랑을 할라 치면, 나는 종종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얘들아 얘들아, 이 숲 속에서 누가 가장 예쁘지?" 그러면 아이들은 "고슴도치요"라고 답하며 웃곤 했다.
그래도 내 자식은 예쁘고 사랑스런 게 부모의 마음이다. 그렇게 사랑스런 자식이 자라면서 괴물처럼 볼썽 사납게 될까봐 부모들은 얼마나 노심초사하는가.
친구와 저녁 식사를 하다가 하루에 두 갑씩 담배를 피우던 골초 아빠의 금연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 날 고등학교 다니는 아들이 아빠한테 담배 끊을 것을 요구하더라는 것이다. 아빠는 사업상 스트레스 때문에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러면 나도 마리화나 피워도 되겠네"라는 아들의 말 한마디에 그 날로 담배를 끊었다는 이야기다.
어린 시절 나는 부모가 돈 많은 친구가 참 부러웠는데 지금 내 자식은 아버지인 나를 보고 어떻게 평가할까 생각하면 자신이 없어진다. 그래도 고슴도치 아들은 고슴도치 아빠를 최고라고 생각할까? 아마 아닐 것 같다. 그러면서 그들은 불평하고 요구하고 반항한다. 이민 1세의 아픔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철부지들이 아닌가.
이민자 아버지는 커다란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아들이 느낄 만큼 사랑하는 의무라고 생각한다. 혹시, 나는 하루에 한시간만 아이를 대하는 한 시간짜리 아빠는 아니었는지. 아내에게 부모 역할을 떠넘긴 직무 유기형의 아빠는 아니었는지. 우리의 아버지가 30년 또는 40년 전에 우리에게 했던 것처럼 우리의 자녀들을 훈육하진 않는지. 나는 많은 아빠들을 만나면서 아빠의 사랑 의무에 너무 소홀한 아빠들을 본다. 그리고 거창하게 맥아더 장군의 자녀를 위한 기도를 생각한다. 그의 기도 중에 다음의 대목을 특히 내 아들에게 전해 주고 싶다.
"그 마음이 깨끗하고, 그 목표가 높은 자녀를, 남을 정복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자녀를, 장래를 바라봄과 동시에, 지난날을 잊지 않는 자녀를 내게 주옵소서"
이제 아들이 느낄 수 있는 사랑을 연구해 보자. 아들과 더불어 외로움을 이기자. 돈 많은 부자보다 따뜻한 부자지간이 되자.
사랑은 참 편하다. 우선 돈이 얼마 들지 않아 좋다. 사랑에는 방법이 많아서 쉽다. 따뜻한 눈길이 사랑이 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사랑이 된다. 작은 일도 칭찬하면 사랑으로 바뀐다. 잠시 시간을 내서 아들의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만 해도 절로 사랑은 쉽게 지나간다.
저녁 밥상에 마주 앉아 같이 먹기만 해도 뭔가 통한다. 이렇게 쉬운 사랑을 왜 이렇게 못할까. 나는 다시 맥아더 원수의 기도 속으로 가고자한다.
"자기 자신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며, 겸허한 마음을 갖게 하시사, 참된 위대성은 소박함에 있음을 알고, 참된 지혜는 열린 마음에 있으며, 참된 힘은 온유함에 있음을 명심하게 하옵시고, 그리하여 어느 날 나의 아버지는, 내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았노라고 고백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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