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에 집을 나와 떠돌던 A군은 거처를 옮길 때마다 늘 빈손이었다. 짐이라고는 손가방 하나도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매일 매일 잠자리가 어느 장소가 될는지 알 수가 없으니까 말이다.
그는 10세 때 부모의 이혼 후 엄마 쪽도 아빠 쪽도 선택할 수 없게 되어 결국 친척집에 맡겨졌다. 사춘기가 되면서 반항이 심해졌고 친척들은 그의 반항을 받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친척집을 뛰쳐나온 후 경찰에 잡혀 소년원으로, 소셜워커에게로 넘겨져 포스트 홈, 그룹 홈에서 생활한 적도 여러 차례였다.
우리는 방황하는 그의 안정을 돕기 위해 여러 번 임시거처를 만들어 주고 기본적 생활도구들을 갖추어 주었다. 그러나 그 도구들은 그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보관할 장소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생활방식은 무엇이든 필요할 때 일단 쓰고, 떠나는 날은 무조건 버리는 것이었다.
대리부모 밑에서 생활하던 B군이 지난달 어느 날 아침 일찍 우리 사무실 앞에 두개의 작은 가방과 라면박스 같은 것 한 개를 놓고 서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어제 18세 생일 지났어요. 그래서 이제는 법적으로 혼자 살 수 있어요"라는 것이었다.
가방 안에는 옷가지 몇 개와 운동화 한 켤레, 책 몇 권, 그리고 서류 몇 가지가 전부였다.
그는 5년 이상을 이리저리 떠돌았다. 16세 때는 거리에서 잠을 잔 것이 한두 번이 아니고, 전기도 물도 끊어진 빈집에 숨어 들어가 한달 이상을 샤워도 못하고 잠만 자고 나와 돌아다니다가 너무 힘들어 자살까지 시도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엄마도 아빠도 다 생존해 있지만 함께 살 상황이 아니라고 했다.
이제 막 16세가 된 C양이 울먹이며 자기 사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 소녀는 10세 미만일 때 부모를 사별한 후 친척집에 맡겨져 생활해 왔다. 그러나 사춘기가 되면서 친척집에서 견디지를 못했다. 잠을 자고 밥만 얻어먹을 수 있는 조건이면 어디든 가겠다고 생각하고 무작정 집을 나왔지만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다가 힘들게 다니던 학교도 못 가게 되었다.
그녀는 사는 것이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벌써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했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친구 집, 친척 집, 포스터 홈, 길거리, 일거리를 주는 집 등 안 가본 곳이 없이 떠돌았다. 그러나 아무도 그 어린 나이에 그렇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이해해 주지 않았다.
가방 한두 개 들고 거리를 떠도는 청소년들을 1년에 적게는 10명 많게는 20여명을 만난다. 이렇게 방황해야 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은 거의 공통적인 의문을 갖는다. 왜 저렇게 돌아다녀야 하지? 친척집에 붙어있지 왜 그렇게 떠돌아 다녀? 저 애들은 친척도 없나요? 소셜워커를 만나면 되지 않나? 포스터 홈 같은 좋은 제도가 있는데 그런 제도를 왜 활용을 못하고 고생을 하나? 등 피상적인 의문들이다.
자기를 돕는 친척들의 집이나 제도적 보호장치에서 뛰쳐나가 거처 없이 방황하는 아이들의 입장에 서 보지 않고는 그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청소년 비행, 탈선문제가 커뮤니티의 큰 걱정거리가 되고 있다. 가정이 깨어지면서 보호막 없이 방치된 아이들을 커뮤니티가 일일이 보살필 수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주위에 거처 없이 떠도는 청소년들은 없는지 우리 각자가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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