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저녁으로 출퇴근할 때 이용하는 큰 길이 래이크 애비뉴이다. 94번 하이웨이로 연결되는 이 길은 차들의 왕래가 빈번한 4차선 도로이다. 이 길은 다른 큰 길들과는 달리 좌회전 차선이나 신호등이 따로 없어 출퇴근 길에는 그야말로 줄을 잘 서야 한다. 대기 중인 좌회전 차량 때문에 급히 차선을 바꾸려다 사고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요즘 우리 동네는 이 래이크 길을 5차선으로 확장하는 문제를 놓고 시끄럽다. 길 양옆으로 래이크길 확장 반대라는 팻말들이 요란스레 나붙었고 엊그제부터는 래이크길 확장은 위험한 발상이라는 팻말까지 등장했다.
물론 이 팻말들은 도로 확장으로 인해 재산상의 피해를 입게 될 길가 주택 소유주들이 세워놓은 것이다. 그들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나 역시 이 길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이들의 태도가 곱게 보이질 않는다. 더구나 동네 인근에 과거 해군 비행장으로 쓰이던 부지가 새 주택단지로 개발되어 인구가 급증하고 있는 터라 도로 확장은 누가 뭐래도 불가피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집단 이기주의는 미국이든 한국이든 여전하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이 논란이 어떻게 결말이 날까 궁금해 하던 나는 그러나 그 결론에 대해 그다지 염려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내가 이해의 당사자가 아닌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결론이 어떻게 내려지던 나름대로의 공정하고 적절한 절차를 거쳐 타협이 이루어지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스스로 내가 이 사회에 대해 갖고 있는 믿음에 대해 놀랐다. 누가 한국을 떠나 굳이 이민자로서의 한계를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이유를 묻는다면 상대적으로 투명한 이 사회도 그 중 하나의 대답이 되었으리라.
가슴 아픈 일이지만 한국 사회의 경우 이러한 믿음을 찾기 어렵다. 워낙 편법과 불법이 판을 치다보니 선량한 일반 시민들마저도 이러고 있다가 나만 바보되는 것 아닌가라는 피해의식을 갖게 되고 급기야는 무기력증까지 느끼게 된다. 엄청난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고위 공직자를 잡아들여도 사람들은 공분을 느끼는 대신 왜, 하필 지금? 무슨 동기로?하는 배후 진상(?)을 더 궁금해 한다.
그러나 최근의 한국 소식을 접하다 보면 희망이 없지는 않은 것 같다. 1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경선 당선 소식이 그렇고, 90년 대 초 감사원 비리를 폭로하는 양심 선언으로 옥고를 치룬 이문옥 씨의 서울 시장 출마가 그렇다.
물론 이들 앞에는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고, 특히 소수 정당 후보로 출마한 이문옥 씨의 경우 당선 가능성이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이들이 지금까지 이루어낸 약진은 그 자체로도 신선하고 고무적이다. 그리고 이들의 약진은 개인적인 능력에만 기인한 것이 아니다.
나는 이들을 변화하는 한국 사회의 표상으로 믿고 싶다. 그리고 이들이 한국 사회가 신뢰를 되찾아 가는 도정에서 초석 역할을 해 주기를 바란다. 설령 이들이 현실 정치에서 패배하는 한이 있더라도 지지자들이 보내준 신뢰를 배반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개인이든 사회든 신뢰감을 구축하는 데는 오랜 세월이 걸린다. 그렇지만 그걸 깨뜨리는 데는 순간이면 충분하고, 한 번 깨어진 신뢰를 되찾는 데는 더 오랜 세월이 필요하다.
우리 동네 도로 확장 문제에서 비롯된 나의 상념이 너무 거창하게 나간 듯 하지만, 투명한 사회에서 느낄 수 있는 신뢰감이 너무 부러운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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