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에서는 그저 우울증이라고만 하던 K부인이 찾아와서 1년 동안 속 앓던 고민을 털어놓았다. 결혼 17년 동안 잡음 없이 잘 지내던 가정이었다. 자녀들도 우등생이고 남편 사업도 순탄했고 K부인 자신도 부지런하고 깔끔한 성격이라 집안 구석구석 단정히 하고 가족 뒷바라지 열심히 했고, 주위에서 잉꼬부부로 소문난 사이였다고 한다.
그러던 가족이 1년 전부터 소리 없는 회오리에 휘말리게 되었다. 남편의 외도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그럴 리가 없다고 부정도 해보고 잠깐 스치는 바람이려니 하고 위로도 해 보았지만 무엇보다도 속에서 끓어오르는 배신감과 증오심은 주체할 수가 없어 생전에 해본 적이 없는 심한 부부싸움도 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적과의 동침’이 시작된 것이다.
최근 이혼 이야기가 부쩍 들리는 것 같아 상담 일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결혼 화환의 향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이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렵게 재혼한 커플들이 또다시 이혼 위기에 있는 사례들을 보면서 이제 이혼이라는 단어가 우리 문화권에서도 너무 익숙한 단어가 되어버렸구나 생각을 하게 된다.
부부 관계를 정신분석 이론에 접목시킨다면 결혼이란 의식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이끌림에 의해서 성립되는 것이라고 한다. 부부관계란 남이 감히 헤아릴 수 없는 복잡한 부분들이 있다.
프로이드는 무의식을 ‘빙산’에 비유하면서 의식의 세계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우리가 꾸려나가는 일상생활들, 훌륭한 자녀교육, 남편의 성공, 헌신적인 아내, 이러한 모습들은 어쩌면 결혼생활에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게 아닐는지. 인간의 무의식이란 그렇게 잘 절제된 것이 아니어서 때로는 미치도록 사랑하고 싶고 때로는 죽이고 싶도록 미워지는 부분들이 있다. 이러한 마음들이 배우자에 의해서 충분히 이해되고 수용될 때, 그리고 부부관계를 통해서 서로에게 잘 용해될 수 있을 때, 탄탄한 관계를 쌓아갈 수 있다.
너무나 ‘모범적’이라는 의미는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나 ‘절제’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기도 하는데, 이는 마치 수문이 없는 ‘둑’과도 같아서 일단 한번 터지면 대체로 걷잡을 수 없는 파경에 이를 가능성이 높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 사이가 좋았던 부부들의 ‘뜻밖의 이혼’은 아마도 우리 안에 숨어있는 이러한 복병을 외면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사실 어느 누구도 이러한 ‘복병’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혼하는 데는 저마다 이유와 사연들이 있긴 하지만 이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경우, 친한 친구나 친지에게 하소연하는 정도로는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차마 남들에게 말도 못하고 부부간에 극한 싸움으로 치닫는가 하면 전문적인 개입을 하려 해도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경우들도 적지 않게 본다. 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서로가 심한 정신적 상처를 받게 되고, 때론 현실적인 판단이 불가능할 만큼 피폐해져 가는 경우도 있다. 심한 부부싸움은 서로에게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금간 벽에 망치질하는 격이다.
그동안 부부간에 어떤 보이지 않는 ‘장애물’이 있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고 해결이 어려우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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