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도 38세의 나이에 이민을 와서 Yes와 No를 구별하는데 무척 힘이 들었다. 더욱 말이 길면 선택하는데 여간 힘들지가 않았다.
어떤 분은 주류면허를 신청했는데 담당자가 형무소에 갔다온 일이 있느냐고 질문하니까 Yes했다가 큰 곤욕을 치른 일도 있으며 전화가 오면 겁이 나서 공포증과 스트레스를 받는 경험들도 있으며 선의의 피해를 본 경우들도 있다.
어떤 분은 LA타임스를 구독하겠느냐는 전화문의에 Yes했다가 구독하게 되어 취소도 못하고 하는 수 없이 영한사전과 씨름을 하여 시사문제에 대해서 일가견을 갖게된 분도 있으니 초창기 이민시절에는 Yes와 No의 어설픈 판단에 희비극이 많았었다.
필자는 다행히 일본어는 의사소통이 되어서 정원관리 일을 일본인을 통해서 한 일주일 동안 배운 후 헌 장비와 일거리를 구입했다. 비는 오고 비탈길에 낡은 브레이크가 문제가 되어 앞차 후면을 받고 말았다. 백인 젊은 여자가 타고 있었으며 경찰 입회도 없이 운전면허를 확인하고 헤어졌다.
이 과정을 이민선배에게 설명했더니 빨리 집에 찾아가서 보험도 없고 가진 것도 없다고 사정을 하라고 해서 이른 아침에 찾아갔더니 목을 다쳐서 동생과 병원에 다녀왔는데 계속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하면서 자기는 보험 브로커로 일을 하고 있다며 명함을 주었다.
계속 이른 아침에 찾아가니까 왜 매일 오느냐고 신경질을 내면서 앞으로 계속 오면 경찰에 신고하겠다 하였다.
한달 후 차 수리비(680달러) 청구서가 왔으며 반응이 없자 운전면허가 정지된다고 해서 매월 10달러씩을 지불키로 해결을 보았으며 다행히 계속 찾아가서 어려움을 호소한 결과였는지 치료비 청구는 없었다. 억지가 사촌보다 나은 것이었을까?
노인단체관광에 어떤 계기로 라스베가스에 간 일이 있었다. 이른 아침 식당에 갔을 때 메뉴의 음식 내용을 몰라서 바나나는 익히 알아서 주저 없이 바나나 쓰인 걸 주문하였다. 큰 넓은 접시에 산 같은 높이로 그 주위에는 위핑크림을 뿌려서 마치 흰눈이 덮여 꼭대기에는 빨간 체리를 장식해서 마치 히말라야산을 정복한 표시 같았다.
겨울철인데다 추운 아침에 스푼으로 먹어도 양이 줄지가 않았고 옆의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 같으며 별로 먹지도 못하고 자리를 빠져 나오는데도 왜 그렇게 시간이 길었으며 그 날 배탈이 나서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30년 전의 일이 생생하며 가끔 좌중에서 바나나 스프레드를 이야기하면 폭소가 터져 나온다.
그 당시 원숭이 취급을 당했던 것을 생각하면 혼자서 웃음이 절로 나오며 아무 것도 몰랐던 그 시절이 지금은 좋은 약이 되어서 스트레스를 웃음으로 조절하는데 얼마나 요긴하게 사용하는지 모르겠다.
이재수/가주 한인정신건강후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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