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나는 미 중부 일리노이 주의 전통있는 한 대학을 방문했다. 내가 가깝게 아는 기업가 C회장의 명예박사 학위 수여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대학 졸업식을 겸한 식장에는 500여명의 학생과 2,000명이 넘는 학부형들이 모여 있었다. 졸업식을 시작하면서 학장은 맨 먼저 이 학교가 창립된 이래 처음으로 수여하는 명예박사학위의 주인공인 C회장을 소개했다.
그가 1950년대에 전쟁으로 황폐한 한국에서 유학생 자격으로 도미해 고학으로 이 학교를 졸업했고 이민1세로 미국에서 사업을 크게 일으켰다고 소개했다.
그리고 그는 모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중 과거의 자기와 같은 처지에 있는 학생들을 위해 장학기금을 만들었고 이 장학금을 앞으로 계속 키워갈 것이라는 소개했다.
이어 단상에 오른 C회장은 비록 고학은 했지만 학교에서 자기에게 제공한 장학금이 없었다면 석사학위를 받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모의 도움도 없었고 친지도 없었던 자기에게 학교는 따뜻한 가정과 같았다고 말했다.
온 식장에 잔잔한 감동의 전류가 흐르는 듯했고 C회장의 인사가 끝난 다음 터져 나오는 학생들과 학부형들의 박수소리에서 나는 마치 "장하다! 한국인이여!" 하는 합창을 듣는 것 같았다. 졸업식이 끝난 다음 C회장과 악수를 하려고 기다리는 백인들이 줄을 이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미국말에 ‘주고 받는다’ (Give and Take) 는 말이 있다. ‘받고 준다’ (Take and Give) 는 말은 없다. 인간관계는 베품에서 시작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남의 호의를 먼저 받은 다음 그에 답례를 하려고 한다면 인간관계는 시작되기 힘들다.
그런데 받는 것은 쉬운데 베푸는 것은 매우 어렵다. 직접적인 대가를 기대하고 돈을 주는 경우는 뇌물을 주는 것과 흡사하다. 돈을 유익하게 쓰는 방법은 과학보다 예술에 가깝다고 한다. 대가성이 없는 기부활동이 미국사회에는 매우 뿌리깊게 확립되어 있다.
과거 가난한 유학생이었던 대선배가 피부색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후배들에게 어떻게 보였을 것인가 하고 나는 생각해 보았다. 수많은 백인 선배들에 비해서 훨씬 많은 역경을 극복하고 성공을 한 다음 다시 모교를 찾아온 코리안 노신사가 얼마나 존경스러워 보였을까.
식장에 모인 2,500여명의 이곳 사람들이 앞으로 한국인에 대해서 어떠한 인상을 갖게 될 것인가. 이 이상 한국을 멋있게 소개할 수 있었을까. 나는 식이 끝날 때까지 잔잔한 감동에 사로 잡혀 있었다.
미국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거북함으로 인해서 미국사회와 단절된 생활을 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오해도 많이 받고 인종갈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4.29 폭동의 경험은 우리에게 아직도 생생하다. 이러한 인종간의 편견은 말로 풀어지지 않는다. 미국 사회 속에 들어가 행동으로 풀어가야 한다. 특히 우리 한인사회의 지도자들이 이러한 일에 앞장서야 한다.
C회장은 자기 나름대로 자기 자신과 한국인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그곳 사람들에게 가장 멋있게 보여주었다. 이번 학위수여식장에서의 경험은 나에게 한국인으로서의 긍지를 다시금 느끼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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