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동안 카운트 다운을 해가며 기다리던 2002 한일 월드컵대회가 드디어 개막됐다. 30일 전야제로부터 1개월간 벌어지는 월드컵은 세계인의 축제이다.
축구는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모든 연령층이 즐기는 운동이며 따라서 팬들도 가장 많다. 세계축구협회가 4년마다 개최하는 월드컵대회는 단일 스포츠경기 중 최대 규모이다. 지난 98년도 월드컵 프랑스 대 브라질의 결승전은 세계 인구의 3분의 1인 17억이 TV 시청을 했다.
한국이 주최국으로 본선에 진출한 이번 월드컵에서는 16강 진입을 눈앞에 놓고 온 국민이 흥분에 들떠 있다. 며칠 전 지난번 대회의 우승팀인 프랑스팀과 친선경기에서 한국팀이 선전한 후 16강 붐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붉은 악마로 불리는 응원단이나 열성 축구팬은 물론 온 나라가 축구 열기에 휩싸여 곳곳에서 16강 경품 이벤트도 법썩이라고 한다. 마치 한국팀이 16강에 들어가느냐 못 들어 가느냐가 한국의 국가 운명을 판가름하는 것 같은 착각마저 일으키게 하고 있다.
스포츠 경기인 월드컵대회의 성적이 왜 이렇게 사람들을 열광시키는 것일까. 그것은 스포츠가 대중의 심리와 에너지를 결집시키는 힘이 대단히 크기 때문이다. 스포츠 경기장을 휩쓰는 군중심리는 폭풍이나 노도와 같이 걷잡을 수 없다.
로마시대의 검투나 스페인의 투우나 오늘날의 스포츠 경기가 모두 그러하다. 그래서 스포츠는 체력 단련 뿐만 아니라 친선과 단합을 도모하는데 이용되었고 회사 사원들의 친목을 도모하고 사기를 올리기 위해 사원 체육대회를 열기도 한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26일자 일요판 매거진에서 독재자들이 축구에 광분하는 경향을 특집으로 다루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이태리의 무솔리니, 나치정권의 괴벨스 선전상, 사담 후세인, 스탈린, 카다피 등이 모두 축구를 정치에 이용했으며 과거 사이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축구를 군중조작에 이용했다는 것이다.
또 빈 라덴 등 테러리스트들이 미국과의 전쟁을 축구에서 이기고 지는 것으로 비유한 사례를 소개했다. 축구는 남미국가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데 아르헨티나와 칠레는 축구 때문에 전쟁을 벌였을 정도로 축구가 정치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했다.
축구 뿐 아니라 모든 스포츠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용되는 경우가 많으며 특히 독재국가일수록 국가 위상을 올리고 독재권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스포츠를 이용했다. 냉전시대에 공산국가들은 올림픽 성적을 국력의 선전 수단으로 삼아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과거 한국에서도 ‘체력이 국력’이란 말처럼 스포츠 경기의 성적을 국력과 동일시하는 사고방식이 자리잡았다. 한일간의 스포츠 경기에서 일본을 이길 경우 국력이 일본을 눌렀다는 착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다. 국민 건강이 국력의 주요 요소임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그리고 국민의 건강수준이 높으면 스포츠 수준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스포츠 성적이 우수하다고 국력이 강한 나라는 결코 아니다. 축구를 잘 하는 나라인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를 ABC라고 하는데 이 ABC는 가장 가난한 나라 중에 속하는 나라들이다. 국력이란 스포츠 수준만이 아니라 정치 수준, 문화 수준, 생활 수준, 경제 수준, 과학기술 수준, 국방력 등 모든 것을 종합한 총체적 힘을 말하는 것이다.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이 16강에 들어간다면 무척 반가운 일이다. 스포츠 성적이 국가의 위상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6강이 되고 못되는 것으로 국가의 사활이 판가름나는 것은 아니다.
경기의 성적에만 골돌한다면 불미스러운 사태를 야기하여 오히려 국가와 국민의 위상을 추락시킬 수도 있다. 88올림픽 때 한국측이 권투 판정을 무리하게 하여 비난을 샀던 일과 지난번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 미국선수의 무리한 우승 판정이 반미감정을 일으켰던 사례가 좋은 예이다.
한국은 월드컵 출전국이기 앞서 개최국이다.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루는 일일 것이다.
테러사건을 철저히 예방하는 한편 높은 수준의 경제와 문화, 국민성을 세계인에게 과시하여 한국과 한국인의 위상을 드높이는 월드컵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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