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대회가 열리고 있는 한국에는 축구가 일상생활의 전부가 되어버린 듯한 분위기이다. 한미전이 열린 지난 10일에는 선수들이 뛰는 운동장 뿐만 아니라 온 나라가 축구 열기에 휩싸였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사람들은 모두 TV 앞에 모여앉아 한국팀을 응원했다. 월드컵 축구 시청을 위해 오전수업만 한 학교도 있었고 기업체에서도 직원들이 TV를 보느라고 오후 일손을 놓았다.
이날 서울의 시청앞과 광화문 일대를 비롯한 전국의 거리에는 백만 인파가 쏟아져 나와 한국팀을 응원했다고 한다. 붉은 악마 응원단이 세계의 뉴스거리가 되었다.
이와 반대로 월드컵 기간에 실시되는 지방선거 운동 현장은 썰렁했다. 썰렁한 정도가 아니라 선거가 있는지 조차 알 수 없을 만큼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선거 이틀 전까지 유권자의 3분의 2 이상이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않았고 투표를 하겠다는 사람은 4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선관위는 실제투표율이 30%대에 그쳐 사상 유례없이 저조한 투표율을 기록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월드컵대회와 지방선거는 4년마다 찾아오는 큰 행사이다. 그러나 국민들의 생활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축구 보다 지방행정인데 왜 사람들이 축구에만 열광하고 선거는 외면하게 되었을까.
월드컵 열기는 한쪽 방향으로 쏠리기 쉽고 뜨겁게 달아오르기 쉬운 한국인의 속성 때문에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경향은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하다. 어떤 유행이 좋다고 하면 모두 그 유행을 따르고 지방색으로 편이 갈리어 대립하는 것도 그런 속성 때문이다.
IMF 때 금 모으기 운동이 큰 호응을 받았던 것도, 국제 스포츠대회 때 한국팀을 열렬히 응원하는 것도 그런 속성 때문이다. 좋게 말하면 집단적 감정이입이 잘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고 나쁘게 말하면 개성 없이 부화뇌동이 심하다고 할 수도 있다.
이런 한국인들의 관심이 월드컵으로 기울어진 데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우선 월드컵대회의 유치 이후 오래동안 매스컴의 주도로 축구 열기를 꾸준히 달구어 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월드컵대회를 제 2의 올림픽으로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심어놓아 한국 축구의 실력 발휘, 즉 16강 진출을 한국 국력의 상승이란 차원과 동일시하는 관념까지 갖기에 이르렀다.
그러니 다른 어떤 일도 월드컵 보다 대중의 관심을 끌 수는 없었다. 특히 한국의 정치는 오래동안 국민을 실망시켜 외면을 받아온 처지였다.
축구와 정치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아주 대조적인 점이 있다. 정치는 탈법, 부정부패, 권모술수로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지만 축구는 정정당당하고 공명정대한 스포츠정신으로 규칙에 따라 승부가 가려지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을 후련하게 한다.
전력투구의 열전끝에 통쾌하게 들어가는 한 골은 사람들을 신나게 한다. 한국팀이 다른 나라 팀을 이렇게 이길 때는 정치 때문에 상했던 기분마저 말끔히 전환될 수 있다. 그런데 이 판에 지방선거가 어떻게 끼어들 수 있겠는가.
결국 월드컵 열풍과 선거 한파는 한국인의 속성 때문에 발생한 바람의 결과이다. 바람은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휘몰아치는 속성이 있어 겨울에는 북서풍, 여름에는 동남풍이 분다.
한국인들의 바람도 이처럼 한쪽으로 휘몰아치기 때문에 한국에서 무엇이든지 성공을 하려면 바람을 잘 타야 한다. 증권바람, 부동산 투기바람, 얼마 전에 불었던 노풍이 그런 바람이고 하다못해 치마바람의 위력도 대단하다.
이제 월드컵의 열풍이 끝나면 또 무슨 바람이 불까. 대통령선거가 4개월 반 밖에 남지 않게 되니 대선바람이 몰아칠 것이다. 이 바람이 어느 방향으로 부느냐에 따라 앞으로 대권의 향배가 결정되기 때문에 바람 부는 방향을 잘 알아내서 바람을 타는 것이 성패를 가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바람의 방향은 이미 예측이 가능하다.
이번 월드컵의 열기와 지방선거의 한파를 곱씹어 보면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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